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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하치 단문
가또쇼콜라
2018. 11. 7. 16:07
2013.12.07
달이 수면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물 속으로 가라앉아 가면서도 기분은 오히려 나쁘지 않다고, 사부로는 생각했다. 다만 조금 추울 뿐이었다. 자신이 라이조를 만나기 전처럼.
주위는 검었다. 검고 푸른 물 속. 자신이 계속 가라앉는 것은 아마 자신이 가진 날표창들 덕일 것이었다. 그것이 그렇게 무거웠던가? 이렇게 끝없이 가라앉을 정도로. 아니, 사실 끝없이 가라앉는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이 강은 그리 깊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자신이 갖고 있던 가면들의 무게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혹은 무기들. 혹은, 혹은…
그게 무슨 상관이야. 자조하듯 웃은 사부로는 공기방울을 내뱉었다. 공기방울은 달을 향해 뽀글뽀글 올라가 터져서 사라졌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터진 걸 것이다. 존재마저도 사라진 것이다. 그래, 라이조, 난 그림자로 있었어야 했어. 너의 그림자가 아닌, 그냥 그림자로써. 세상에 나오지 말았어야 했어.
사실 사부로는 임무가 위험하다는 건 충분히 자각하고도 남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인 것은, 라이조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나의 빛. 빛은 어둠을 보면 안 되는 것이다. 닌자는 어둠. 하지만 난 그 중에서도 어둠이 될 거야. 이 세상은 너로 이루어져 있어. 그래서 임무도 혼자 받은 것이었다. 라이조 몰래.
결과는 이렇게 됐다. 사부로가 느끼기엔, 과다출혈로 슬슬 정신을 잃을 것도 같았다. 숨도 부족해지기 시작했고…아, 나오기 전에 라이조를 피하지 말고 작별인사라도 할 걸 그랬나. 하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사부로는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라이조의 얼굴을 한 가면은 이미 벗겨져 달을 향해 떠오르고 있었다. 붙임머리도 떨어진 지 오래일 것이었다. 시야가 흐렸다. 라이조. 아마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었다. 후와 라이조. 라이조……
"사부로? 일어나 봐, 사부로…!"
그리고 사부로가 눈을 떴을 땐 갈색이 있었다. 갈색 머리.라이조의 머리칼. 라이조? 사부로가 놀란 얼굴로 라이조를 부르려 했지만 그 전에 기침이 먼저 나와 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사부로가 쿨럭이며 상체를 일으키자 라이조의 떨리는 손이 제 등을 치는 것이 느껴졌다. 사부로는 물을 모두 토해내고 입가를 닦으며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닿은 그곳엔 정말 라이조가 있었다.
"라이조……?"
놀란 눈을 어찌 할 줄도 모르고 그대로 굳어있다가, 한참 후에야 사부로는 손을 천천히 들어 라이조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려 잡았다.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가짜가 아닌, 꿈이나 환상따위가 아닌 진짜 라이조가 있어.
"어떻게…?"
"……설마 전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설핏 본 라이조의 눈엔 눈물이 고여있었다. 사부로는 멍한 표정으로 라이조를 보았다. 라이조는 닌자대 동료들이 네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항상 같이 임무를 수행할텐데 나 혼자만 간 것이 이상했겠지. 라이조는 나에 대해 대장에게 물어봤겠지……멍청한 사부로.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다. 이상하게 라이조에 관한 일 만큼은 평소처럼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었다. 왜? 다른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어서?
사부로는 한숨을 쉬고 손으로 제 얼굴을 덮었다. 그러고보니 가면이 떠내려갔지. 정확히는 가면들이. 그걸 알아차린 듯 라이조는 제 옆에 있던 무언가를 사부로에게 건네주었다. 여우 가면.
"머리카락은 가릴 수 있으니 괜찮을거야."
고맙다고 말한 사부로는 가면을 쓰고 풀어진 제 검은 머리를 묶어 옷과 두건 속으로 숨겼다. 젖은 머리가 축축했지만 상관 없었다. 항상 했던 행동이었다. 사부로, 네 얼굴 오랜만에 본다. 웃으며 라이조는 말했다.
"이제 돌아가자."
"…라이조."
"알아, 화는 돌아간 다음에 낼게. 추궁도 돌아간 다음에 할 거야. 그러니까…돌아가자. 같이."
같이.
사부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는 저도 알 수 없었다. 만일 라이조가 오지 않은채 자신이 그대로 죽었다면, 그래도 조금은 쓸쓸했을까.
사실 대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니, 죽음조차도 의미가 없었을 거야. 내 삶엔 오로지 네가 존재하니까, 후와 라이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