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효첨 단문 2개
"효첨이 형, 오늘도 수고했어요."
막 상황이 끝난 직후, 소울폰으로 제령한 령충의 데이터를 보내던 효첨은 문득 들려온 정월의 말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정월은 언제나처럼 방긋 웃고있었는데 그게 가끔 하얗고 작은 진돗개 같다는 걸 정월 스스로는 역시 모르는건지, 이번엔 정월의 머리로 시선을 옮긴 효첨은 그걸 한참이나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곤 턱으로 정월을 가리켰다.
"형이 더 힘들잖아요? 쫓는 건 같이 쫓아도 제령은 거의 형이 하고."
"……."
"그런 말 마세요. 사실 도련님 몫까지 형이 다 하고 있는 것 같은걸요."
"……."
"효첨 형도 참."
정월이 소리내어 웃었지만 돌아오는 건 소울폰의 화면을 닫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 또한 익숙해진지 오래였기에 정월은 그저 웃음 뒤에 이어진 가벼운 헛기침을 할 뿐이었다. 효첨은 정월을 힐끗 보곤 길쪽으로 눈짓을 했다. 찰나였지만 그걸 정월이 포착 못할리도 없어서, 먼저 앞서나간 효첨을 빠른 걸음으로 따라잡아 옆까지 와서 다시 그를 보고 웃었다. 결국 정월의 시선이 도착한 곳은 하늘이었다.
"달이 밝네요. 여기도 하늘만큼 평화로웠으면 좋겠는데 말예요."
"……."
"아무래도 그렇죠. 그럼 명계가 있을 이유도 없겠네요. 아, 형도 아예 못 봤을거에요. 차사가 되어서야 봤잖아요. 그럴수밖에 없고…"
어쩐지 씁쓸하게 끝을 맺은 말은 한숨처럼 흘러나와 그들 주위를 맴돌았다. 이내 정월이 쓸데없는 말을 했다며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효첨은 계속 앞을 보고 걸을 뿐이었다. 정월이 역시 효첨이 형이라고 생각할 즈음 갑자기 효철은 걸음을 멈췄다.
"형? 왜 그래요?"
어떠한 징조도 없이 갑자기 멈춘 것이여서 정월은 당연히 의문을 표했고 효첨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 정월이 다시 호칭을 부르기도 전에 고개를 숙였다. 정월이 말을 하기 위해 살짝 벌려진 입술 위로 닿은 것은 마찬가지로 입술이었다. 정월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눈은 절로 감겼지만 정월에게 느껴진 건 있을리도 없는 심장 소리였다. 두근두근, 하고. 금세 떨어진 입술은 아쉬울만도 했지만 모든 감각이 그곳에 집중되어 정월은 아쉬울 새도 없었다. 이번엔 효첨의 입술이 벌어졌다.
"…지금."
중요한 건, 지금.
꽃이 피었던 자리엔 여름이 다가와 푸른 발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꽃들이 떨어져 흙으로만 가득 찬 땅 위에 눈처럼 내려와 쌓인 그 사이사이로 녹색의 풀잎이 빼꼼히 보였을 때에야말로 효첨은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다. 곧 여름인가, 라고.
"무슨 생각해요, 형?"
그때 발자국 소리가 뒤에서 들렸지만 효첨은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정월. 여전히 돌아보지 않고 있는 효첨이 익숙한듯 정월은 효첨의 앞까지 가 빙긋 웃었다. 그제야 효첨은 시선을 정월쪽으로 향했다.
"되게 유심히 보길래요. 뭐라도 있었어요?"
"……."
검지를 들어올린 손이 향한 건 정월이 밟고 있는 자리였다. 당황한 정월은 어, 하는 소릴 내며 아래를 본 채로 황급히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당연히 무언가의 생물이 있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정월은 다리를 굽혀 아래를 빤히 쳐다보았다.
"풀? 풀을 보고 있었어요?"
효첨은 고개를 끄덕이곤 하늘을 향해 팔을 옮겼다.
"… 여름."
"아, 곧 있으면 여름이긴 하죠. 풀이 정말 푸르러서 예쁘네요."
바닥에 완전히 아빠다리로 앉은 정월은 웃으며 허리를 굽히곤 풀잎을 조심스레 만지작거렸다. 효첨은 그저 풀잎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그들 사이엔 잠시간 쨍한 햇빛만이 떨어져내렸다. 간간히 가벼운 바람소리만이 들리다, 당연하게도 정월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있죠, 형이 무엇이든 조금만 표현한다면 분명 얼마나 상냥하고 좋은 사람인지 누구나 알게 될 거예요. 방금 말한 것도 무표정한 느낌은 아니었잖아요. 오히려 감성적인 느낌이었죠. 저는 형이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해요. 과묵한 사람보다는."
움찔한 손가락이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효첨의 눈은 어느새 정월을 향해있었다. 한참이나 정월의 눈에 시선이 멈춰있던 효첨은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곤 정월의 옆에 앉았다. 따라내려온 옷자락이 펄럭였다.
"… 정월."
"네?"
"… 나는."
좋은 사람은 분명 아닐거다. 다물린 입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정월은 풀잎을 만지던 손을 내려놓았다.
"그렇기에 나는 네가 좋다. 너야말로 상냥한 사람이다. 누군가 날 알아준다면, 네가 알아주는 것이 좋다. 다른 누구보다도."
다시 바람이 불었다. 길게 휘잉하는 소릴 내며 지나간 바람은 귀에도 잔바람을 남겼다. 그럼에도 정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