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적] 비
2016.10.24
동물전대 쥬오우쟈, 몬도 미사오x카자키리 야마토(미사야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퍼붓는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온 도시를 적시기엔 충분한 정도의 양이었다. 그것은 카자키리 야마토가 살고 있는 곳의 산 중턱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야마토는 그런 날에 유독 생각이 많아지곤 했다. 물론 감상에 젖기 쉽도록 나무 아래서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걸 본인이 의도한 바는 전혀 아니었다.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나…."
야마토는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으며 촘촘이 쌓인 나뭇잎 아래에서 그 바깥으로 손을 뻗었다. 톡, 톡 하는 경쾌한 소리가 손바닥과 손가락을 타고 팔까지 전해져왔다.
야마토가 비를 맞게 된 건 아주 간단한 이유에서였다. 정말 단순하게 조류 관찰을 위해 반쯤은 습관적으로 망원경만을 목에 매고 산을 올라왔을 뿐이었는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새를 관찰하기도 전의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까지는 아무래도 좋았는데 점심까지의 하늘은 분명 아주 화창했기에, 야마토는 비가 올거라고 쥬먼들조차 생각을 못 했으리라 생각했다. 심지어 오늘의 빨래 널기 담당이었을 레오조차도. 그것 때문에 레오와 터스크가 투닥투닥 싸울 소리가 벌써부터 들려오는 듯 해 야마토는 굉장히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 슬슬 내려가는게 좋을텐데."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나무에 기대고 있던 야마토는 등을 곧게 세우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돌아가기에 방해될 정도로까지 비가 오는 건 아니었다. 머리와 옷이 좀 젖겠지만 방 안에 옷을 널어놓고 수건으로 몸을 좀 털면 해결될 문제였고 이 정도에 감기가 걸릴 정도로 몸이 허약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야마토가 망원경을 품 안에 넣고 뛰어갈까 걸어갈까를 재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들린 것은 발소리였다. 정확히는 철벅철벅하고 진흙을 밟고 있지만 반쯤 나뭇잎들에 묻힌 듯한 소리였다. 서둘러 비를 피하는 거라고 생각하기엔 비교적 느릿한 소리였기에 야마토는 고개를 기울이며 근원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일 먼저 보인 것은 검은색 우산이었고, 그걸 쓰고 있는 것은 몬도 미사오였다.
"밋쨩?"
미사오를 발견하자마자 야마토가 선 곳에도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해 저도 모르게 허둥지둥해하자 미사오는 팔을 뻗어 자신이 쓰고 있던 우산을 야마토에게 씌워주었다. 제 머리 위에 양 손을 대고 있던 야마토가 멈칫했다.
"여긴 어떻게…그보다 비 맞고 있잖아, 밋쨩!"
그새 미사오의 어깨가 젖기 시작한 걸 보고 야마토는 미사오의 손을 잡아 우산을 그의 쪽으로 기울여주었다. 하지만 미사오의 손목이 다시 움직였기에 우산은 다시 야마토쪽을 향했다. 야마토가 앓는 소리를 내자 미사오는 다른 쪽 손을 들어보였다.
"우산은 두개니까 괜찮아."
"어?"
빨간색의 작은 우산이었다. 낯익은 모양과 낯익은 색, 틀림없이 본인의 것이었기에 야마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다만 어라, 라는 생각을 한 직후에 미사오가 말을 이었다.
"마리오씨가 말해줬어. 터스크와 레오, 세라, 아무가 걱정된다고 해서 내가 가본다고 했어."
"어…고마워, 밋쨩. 그래도 산인데, 용케 찾아왔네."
"주로 이쯤으로 온다고 했으니까."
그 말을 한 것은 삼촌이라고 확신한 야마토는 괜히 제 뒷머리를 헝클듯 쓰다듬었다.
"그런데 그 우산, 내 방 책상에 있던 거였어?"
"응."
"아차…어쩐지 미안하게 되어버렸네."
미사오가 살짝 뜨인 눈으로 야마토를 바라보자 야마토는 머쓱해하며 미사오의 손에 들린 빨간색 우산을 가져와 똑딱이를 풀고 펼쳐보였다. 큼직하게 찢겨진 원단의 사이에 젖어가는 나무가 있었다.
"내 실수로 찢어졌던 건데, 집까지 가져와놓고는 조만간 버려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거든."
미사오는 아무 말도 없이 찢어진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이거 혹시, 라는 생각에 야마토가 미사오를 불렀지만 미사오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저, 그…밋쨩?"
그러다가 우산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꽈악 들어갔다.
"…역시 나에게는,"
"잠깐만, 밋쨩? 밋쨩?"
"너에게 우산을 가져다줄 자격 따위는 없었어."
어쩐지 하늘에서 띵 하고 맑게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미사오가 다리를 굽혀 앉기 직전에 야마토는 이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며 어깨를 붙들곤 고개와 손을 빠르게 흔들어보였다. 마음만큼이나 다급한 몸짓이었다.
"아니아니아니, 이건 내 실수니까 괜찮아!"
"그렇지만…"
"그렇지만이 아니야! 밋쨩은 몰랐으니까 내 실수가 맞아. 같이 쓰고 가면 되잖아. 응? 밋쨩."
어깨를 토닥이던 손이 움직여 손잡이를 잡은 손 위로 올라갔다. 야마토의 손바닥 아래로 조금은 차가운 손등의 온도가 전해져왔다.
"밋쨩이 굳이 여기까지 와줬잖아. 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고 생각해."
위로하듯 웃는 얼굴이 반쯤은 울먹이는 미사오의 얼굴과 마주쳤다. 언제나처럼의 저음이 귀를 간질였다.
"야마토…"
손등을 꼭 쥐자 미사오의 팔이 조금 떨려와 야마토는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같이 우산 쓰고,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