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라마일 눈뿅 조각
2017.08.12
"좀 내버려두라고, 개자식아."
마일즈는 손에 쥔 총을 떨어트리지 않은 채로 이를 갈며 말했다. 언제나 그렇듯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말을 거는 것은 마일즈가 가진 일종의 나쁜 버릇이었다.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언젠가 생길 지성을 기대하는 어리석음. 그렇다는 것을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었기에 자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덤이었다.
한숨을 쉰 마일즈는 손을 들어올려 총구를 제 왼쪽 눈에 가까이 댔다. 끝을 알 수 없는 새까만 심연이 보였다. 그 반대쪽 눈에 비치는 것은 마찬가지로 새까만 얼굴이었다. 기분 나쁜 녹색으로 빛나는 가루 인간. 나노 괴물. 월라이더. 보기만 해도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원초적인 감정이 혐오인지 두려움인지 마일즈는 알 수 없었다.
"알겠지. 이번엔 그냥 보고만 있어."
방아쇠 위에 올라간 검지가 조금 망설이듯 멈췄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은 듯 천천히 움직였다. 금속성의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서부터 퍼졌다.
"아니면 또 막아봐,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욕을 덧붙임과 동시에 묵직하게 탕 하는 발사음이 났다. 그 직후에 들려오는 소리는 퍽, 이었다. 절대 날 수 없는 소리였다. 동시에 그것은 마일즈 자신이 인식할 수 있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씨발."
순식간에 현기증이 일어 마일즈는 잠시 몸을 비틀거렸다. 귀에서 이명이 들리고, 눈으로 보는 것들이 완전히 까맣게 물들어 테두리만 야광 녹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자주 봤던 풍경이자 인정하기 싫어도 반쯤 익숙해진 세계였다. 아마도 월라이더의 시야. 야간 캠코더의 시야. 그러나 현기증이 인 것은 한쪽 눈만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총을 쏜 쪽 눈만.
"개자식."
마치 피처럼 볼을 타고 흐르는 모래의 질감이 느껴졌다. 피부에 엉겨붙듯 달라붙는, 가벼운 먼지같은 모래. 이내 사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총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일즈는 저도 모르게 한쪽 손으로 눈을 감싸고 신음했다. 이명이 꺼지질 않았다. 뻗어진 팔이 몸을 지탱하기 위한 것을 찾아 더듬거렸지만 매끄럽고 차가운 것에 닿았을 뿐이었다. 한참 후에야 마일즈는 정신을 대강 차리고 손 끝의 물체를 보았다.
전신거울이었다. 멍청한 마일즈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뭔가 위화감이 느껴져 마일즈는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봤고, 깨달았다. 그 안에 비치는 것은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그야 평범한 사람이라면 눈동자 밖이 검은색이 아니고 흰색일테니까. 순간 소름이 돋은 마일즈는 총을 든 손을 올렸다. 쨍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