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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죠세] SUNFLOWER

가또쇼콜라 2018. 12. 7. 16:47

2015.05.27

※죠죠 온리전에서 판매했던 원고입니다. 재판할 계획이 아예 없기 때문에 웹공개합니다.

※현대 대학생/하나하키 AU



그들, 시저와 죠셉이 대학을 다니던 3학년 때의 여름이었다.

꽃을 토해내던 죠셉의 동기가 있었다. 보라색의 각시붓꽃. 길거리에 떨어져 있던 꽃이 하도 예뻐서 저도 모르게 주운 적이 있었는데 그러고 몇 시간 후부터 꽃을 토하게 됐다고 얘기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죠셉이 슬쩍 물으니 동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얼굴을 슬쩍 붉힐 뿐이었다.

동기는 며칠에 한 번씩 불규칙적으로 꽃을 토해냈다. 토해내기 전엔 심장이 저릿거리고 토기가 울컥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동기는 화장실로 달려가 괴로운 소리를 한바탕 낸 다음 옷에 꽃잎을 잔뜩 달곤 화장실에서 나오곤 했다. 죠셉이 괜찮냐고 물을 때마다 동기는 매번, 목구멍 안에 꽃의 향기가 남는 건 괜찮은데 꽃을 토할수록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확실히 동기는 날이 지날수록 천식 환자처럼 색색 숨을 내쉬고 잦은 기침을 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입에선 꽃잎이 흩날렸다. 그쯤 되니 죠셉은 정말 동기가 걱정되어 어떻게 고백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동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이미 연인이 있으니 안 된다며 그저 기침하며 꽃을 뿌리고 토하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동기의 얼굴은 점점 파리해져갔다. 동기의 주변에 다가가기만 해도 각시붓꽃 향내가 죠셉의 코를 가득 채웠다. 그 향기를 맡으며 죠셉은 자신도 모르게 괴롭다는 생각을 했다.

날이 갈수록 동기는 얼굴을 보기 힘들어졌다. 학교를 나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가끔 죠셉은 동기의 자취방을 찾아가보기도 했다. 동기는 점점 더 수척해지고 있었다.


[솔직히 이 병, 되게 잔인한 거 아니냐? 괴로워서 죽을 것 같은데 정작 병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는게.]

 

죠셉이 동기의 입에서 직접 들은 마지막 말은 그랬다. 며칠 뒤, 죠셉은 동기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목을 매달았다고 했다. 그 얘길 듣는 순간 죠셉의 머릿속에는, 죽는 순간만큼은 꽃을 토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가 죽은 자리엔 여전히 각시붓꽃의 꽃잎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고 그랬다.

동기의 장례식엔 꽃향기가 가득했다. 각시붓꽃 향. 동기에게 달라붙은 꽃은, 혹은 꽃 향은 동기가 죽어서도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진득했다. 지겹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정작 동기가 어떻게 느꼈을지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죠셉의 생각은 그랬다.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향을 피우며 나는 냄새와 꽃 향이 섞여 죠셉의 콧속으로 들어왔다. 저도 모르게 헛기침을 했다가 문득 각시붓꽃 향이 갑자기 진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죠셉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얀 국화, 검은 액자, 동기의 사진이 차례대로 눈에 들어왔다. 없을 리가 없을 텐데, 라고 생각하며 관이 있는 쪽의 바닥을 보자 그제야 각시붓꽃이 죠셉의 갈색 눈동자 안에 가득 담겼다. 이걸 왜 이제까지 발견 못했냐는 의문과 함께. 어느새 주변에서 들리던 통곡소리가 사라져 있었다. 지나치게 집중해서였을까, 하지만 죠셉은 그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아 꽃을 살펴보았다.

방금 피어난 꽃처럼 생생하고 예쁜 보랏빛을 띠고 있는 꽃잎이 있었다. 문득 소름이 끼쳤지만, 이게 왜 여기 있지 하는 의문은 생각나지도 않은 듯 죠셉은 손을 뻗어 바닥에 흩어진 꽃잎을 만졌다. 부드러우면서도 조금은 까슬한, 틀림없는 생화의 느낌이었다. 그제야 죠셉에게 이게 왜 여기 있냐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대답해줄 수 있는 동기는 이미 관 속에 누워있는 채였다.

죽은 후에도 꽃의 저주만큼은 남는다는 걸까? 만일 정말 그렇다면 그것만큼 끔찍한 일은 세상에 없을 것이었다. 거기까지 죠셉이 생각한 순간, 그의 머리 안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길거리에 떨어져 있던 꽃이 하도 예뻐서 나도 모르게 주웠는데, 몇 시간 후부터 꽃을 토하게 됐어.]


동기가 해준 말이었다. 꽃을 토하고 난 후 손을 씻으며 죠셉에게 해준 말이었다. 꽃. 길거리에 떨어져 있던 꽃. 죠셉은 제 손에 들려있는 보라색의 꽃잎을 바라보았다. 떨어져 있던 꽃.


[길거리에 떨어져 있던 꽃이 하도 예뻐서 나도 모르게 주웠는데…]


죠셉의 기억속의 동기는 천천히, 다시 아까 떠올린 말을 내뱉었다.

 

[몇 시간 후부터…]


마치 되감기를 하고 천천히 재생을 누른 것 마냥.


[…꽃을 토하게 됐어.]


머쓱한 듯 동기가 웃었다. 어느새 머릿속에서 재생되던 동기의 영상은 꺼지고 새까만 어둠만이 죠셉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어둠은 이내 보라색의 꽃잎으로 가득 찼다. 전염. 이 병은 혹시 전염되는 건가?

문득, 죠셉은 토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심장에서부터 두근거리며 울컥하는 느낌. 설마 나도, 나도 꽃을 토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꽃잎의 생각 위를 또 가득 메웠다. 그렇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죠셉이 들은 동기의 말로는 분명 짝사랑 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주위의 수많은 사례들도 그러했다. 분명 이 병은, 짝사랑 하는 상대가 있어야 걸릴 것이었다. 그러니 걱정 없을 것이었다. 죠셉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하지만 불안했다. 무언가를 저 멀리서부터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무엇을 놓친 거지? 꽃잎을 두 손가락으로 꽉 잡은 죠셉은 필사적으로 머릿속 너머, 저 너머를 끝없이 헤집어보았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둠속을 계속해서 나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한순간에 바닥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울컥하며 휘청거리는 느낌, 그러니까 왜?

 

“거기서 혼자 뭐 해?”


그때 들려온 말소리에 죠셉은 저도 모르게 놀란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천장의 조명 빛에 순간 눈이 부셔 제게 말을 걸어온 사람의 얼굴이 처음엔 잘 보이지 않았는데 이내 눈이 빛에 익숙해지면서 죠셉은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게 됐다. 시저 체펠리. 같은 고등학교에서 만난 흔하디흔하게 친한 친구, 같은 대학교를 갔던 그였다. 시저는 고개를 약간 삐딱하게 기울이고 죠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죠셉은 한순간 시저가 잘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두근거리는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정말 한순간일 뿐 이내 꽃잎을 내려놓고는 완전히 뒤돌아 일어서 시저와 눈을 마주쳤다.


“아냐, 아무것도.”

 

문득 머쓱해진 죠셉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마음과는 전혀 다른 말을 내뱉었다. 시저는 별로 수긍 가지 않는단 눈치였지만 입 밖으론 그러냐, 라고 말하며 슬슬 돌아가자는 의미로 엄지손가락을 들어 뒤를 가리켰다. 뜻을 알아챈 죠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부턴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뭘 했는지도 죠셉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했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니었는데 깨어나보니 아침이라니 그게 말이나 되나 싶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울컥할듯한 느낌과 가슴부터 저릿거리는 느낌을 아주 강하게 받아 강제로 깨어난 거였지만 어쨌든, 죠셉은 잠에서 막 깬 와중에도 멍하니 이 느낌이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익숙한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꽃을 주웠을 때 느낀 것이었다. 그러니까 왜―벌써 두 번째인 생각을 하며 죠셉은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화장실로 뛰어갔다. 목구멍에서부터 울컥거리는 것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 느낌. 이 느낌. 죠셉은 그것이 뭔지 알고 있었다.

직후의 감각은 끔찍했다. 변기 쪽에 얼굴을 가져다대자마자 온몸이 휘청거리는 느낌이 들어 변기 가장자리를 꽉 움켜쥐어야만 했다. 게다가 주변의 공기가 살갗에 닿는 것이 소름끼쳐 죽을 지경이었다. 이내 가슴의 저릿거림이 심해지며 목구멍이 갑자기 꽉 막히는 느낌이 들어 죠셉은 헛구역질을 여러 번 했다. 눈앞이 흐릿해졌지만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안쪽부터 더 눌리는 느낌이었다. 괴로웠다. 괴롭고, 괴롭고, 괴로웠다. 다시 헛구역질 여러 번. 그제야 무언가 목구멍을 통해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더 괴로워져서 변기에 이마를 박아버리고 싶었지만 자신의 왼쪽 가슴을 쥐어뜯으며 참았다. 고통스러운 소리가 죠셉의 목 안에서부터 새어나왔다. 목소리는 막혔다가도 다시 새어나왔다. 얼마나 그렇게 긴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까, 죠셉이 눈물을 줄줄 흘릴 때 즈음에야 커다란 꽃봉오리를 토해낼 수 있었다. 죠셉의 주먹보다 더 큰 꽃봉오리였다. 노란색. 죠셉은 이 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꽃봉오리는 입 밖을 나와 변기에 꽃 받침대가 닿는 순간 꽃을 피워냈다. 그것은 큰 해바라기였다. 태양을 따라 고개가 움직이는 노란 빛의 밝은 꽃. 죠셉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것은 시저의 꽃이라고. 그리고 확신했다. 짝사랑하고 있었구나. 가짜가 아니라 진짜로. 다른 누구도 아닌 시저를. 정말 뜬금없다 싶었지만 사실 계기는 지나치다 할 만큼 간단했을 거라고 죠셉은 생각했다. 언제부터였는지 잘은 기억 안 났지만, 죠셉이 어렴풋이 생각하기론 아마 고3때였을 것이었다. 고3의 어느 날 부터인가 시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시저가 빛이 나서였을수도 있고 오래 지내다보니 그런 느낌이 들었을지도 몰랐다. 죠셉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은 없었지만, 그만큼 확실하게 이성애자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시저한테만큼은 묘하게 납득이 됐다. 뭐 시저잖아, 같은 느낌으로. 하지만 고등학교 때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고, 그냥 최근 대학교에 들어서서야 가끔가다 시저를 보며 쿡쿡 찔리던 듯한 가슴의 감촉을 기억할 뿐이었다. 그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물론 시저와 여자가 함께 있을 때 마다 더 쿡쿡 찔리는 가슴이 있었지마는, 가끔 그의 생각에 우울해질 때도 있었지마는, 손을 잡으며 저도 모르게 두근거리던 걸 기억했지마는……맙소사, 나 진짜로 좋아했던 건가?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 다시 울컥하는 느낌이 들어 죠셉은 또 꽃봉오리를 토해야 했다. 한 세 개쯤 뱉어냈을 즈음 꽃을 토하는 것이 드디어 멈춰 죠셉은 눈물을 닦으려 세면대에서 세수를 한 후 양치를 두어 번 했다. 목구멍에서부터 꽃냄새가 핑 돌아 머리까지 어지러운 것 같다는 착각이 일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딴 걸 토해냈으니 어지러운 건 당연하다 싶었지만 꽃을 토해낸다는 몸속의 원리가 짐작조차 가지 않아서인지 머리가 더 아팠다. 죠셉은 이내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양칫물을 우물거리다 퉤 뱉었다. 하지만 입 안에서 나는 꽃향기는 전혀 가시지 않았다. 심지어 치약 향과 같이 섞여서 나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한 죠셉은 기분이 두 배로 착잡해졌다고 생각했다. 물론 실제로도 그랬다.


 

시저의 눈에 비치는 죠셉의 모습은 언제부턴가 파리한 안색을 띠고 있었다.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지나치게 멀쩡해서 오히려 뛰어다니던 듯한 죠셉은 사라지고 시름시름 앓고 있는 듯한 죠셉만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시저 자신을 슬쩍 피하는 기미까지 보였다. 죠셉이 가끔 자리를 비우는 건 열 보 양보해서 그렇다 쳐도 말이었다. 걱정돼서 아닌 척 따라오면 따라오지 말라고 하면서 도망가고, 신경 안 써도 된다고 그러고. 시저는 한쪽 눈을 가늘게 떴다. 팔짱을 낀 오른팔의 검지는 팔뚝 위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이러면 도대체 누가 신경을 안 쓸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몇 년이나 된 친구 사이인데 말이었다.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하루는 또 갑자기 죠셉이 황급히 어딘가로 가려 하기에 일단 알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느릿하게 따라가 본 적이 있었다. 이유는 시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떄문이었다.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생각도 못 했을 일이었는데 죠셉 죠스타의 일이라고 하니 이상하다 할 만큼 알아서 납득이 되어버려서 스스로도 이상할 지경이었지만 발은 착실하게 죠셉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정말 이상할 일이었지만 어쨌든 죠셉이 도착한 곳은 화장실이었다. 죠셉이 양변기가 있는 곳의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며 시저는 저도 모르게 흐음, 하는 목소리를 냈다. 자신은 도대체 왜 그랬나, 죠셉은 왜 화장실 간다고 말을 안 했나 싶은 의문도 함께 담긴 목소리였긴 했지만 이내 안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면 그대로 돌아갔을 테였다. 그러니까, 욱 하는 소리 말이었다. 시저가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듣기만 해도 괴로운 목소리가 안쪽에서 연달아 나기 시작했다. 꼭 토를 하는 것 같은 소리였지만 마냥 그렇다고 하기엔 조금 이상한 소리였다. 그러니까, 소리가 산뜻한 느낌이었다. 시저는 이게 도대체 뭔 소린가 싶었지만 여하튼 듣기로는 그랬다. 그렇다면 죠죠가 계속 파리한 안색을 띠고 있던 건 몸이 아파서 그랬나? 시저가 진지하게 생각을 할 무렵, 어느샌가부터 주위가 조용해져 시저는 저도 모르게 주위를 돌아보았다. 자신이 생각에 빠져서 그랬나 싶었지만 화장실은 실제로도 조용해져 있었다. 죠셉이 토하기를 멈췄나보다 싶었다. 죠셉이 제가 여기까지 따라온 것을 몰라야 하니 이제 슬슬 나가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 시저는 발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금세 한 가지를 더 깨닫고 옮기던 발을 멈춰야만 했다.

꽃향기. 화장실엔 꽃향기가 가득했다.

 

결론적으로 시저는 죠셉에게 제가 따라왔다는 걸 들켰고, 며칠 동안은 서먹해져있어야 했다. 물론 죠셉이 먼저 피한 것이었다. 이번만큼은 시저도 뭐라 할 수가 없었으니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저는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며칠 뒤 시저가 죠셉의 모습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사람이 없는 건물의 뒤쪽. 죠셉은 오른쪽 손으로 벽을 짚고 또다시 괴로운 소릴 내고 있었다. 며칠간 서먹하게 봤던 얼굴이 더 파리해졌던 걸 생각한 시저는 그랬던 것도 잊고 저도 모르게 자연스레 다가가 죠셉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누가 그럴 줄은 몰랐다는 듯 파드득 떤 죠셉은 뒤를 돌아보았다가 두 번째로 기겁했다. 누가 봐도 시저가 있을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마음에 안 든다는 생각을 벌써 몇 번째 하더라, 시저는 생각을 뒤로 넘기며 입을 열었다.


“너 왜 그래.”

“…니가 왜 여기 있냐?”


하지만 자신을 거부하는 듯한 죠셉의 말에, 시저는 정말 자신도 왜인지 몰랐지만 순간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이상하다 싶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뭔가 잘못돼서 저 멀리서부터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무엇을?


“왜 여기 있냐니, 난 네 옆에 있으면 안 되나?”


돌려 말하는 것 없이 바로 던진 시저의 말에 죠셉은 퍽이나 당황한 듯 보였다. 한편으로는 초조해보이기도 했다. 시저는 도통 죠셉이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최근 들어 왜 그러는지 모르겠군. 그러니까, 계속 왜 피하는 건데. 나를.”


그러면서도 은연중에 이 말은 너무 앞서간 것 아닌가 싶었지마는, 무슨 사이라도 된 것 마냥 구는 것 아닌가 싶었지마는 친구고 죠셉 죠스타니까 그러려니 쉽게 넘겨버렸다.

 

“지금은…설명하기 좀 그런데, 나중에 얘기하면 안 되냐. 빨리, 가. 아니면 내가 갈 테니까.”

“싫으면 싫다고 얘기하던가, 아니면 설명이라도 해주던가.”

“아니…가라니까.”

“내 말 안 듣고 있나?”

 

죠셉은 정말로, 정말로 곤란해보였다. 하지만 시저는 기어코 이번에야말로 무슨 연유인지를 들을 작정이었다. 팔짱을 낀 시저는 죠셉을 물끄럼 바라보았고 죠셉은 그 마음을 알아차린 듯 양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복잡한 심경이 담긴 몸짓, 죠셉은 뭐라 말하려 했지만 그러기 전에 울컥하는 게 다시 올라온 듯 등을 확 구부렸다. 헛기침 소리, 죠셉이 다시 그럴 줄은 몰라서 당황한 시저는 멈칫했다 죠셉의 옆으로 가려 했다. 죠셉은 팔을 휘저었다. 누가 봐도 가라는 뜻이었지만 시저는 꿋꿋했다. 굽혀진 죠셉의 등을 보며 한숨을 쉬고 두드려주었다. 무슨 병이라도 걸린 건가 싶었다. 그 와중에도 괴로운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한참을 욱욱대던 죠셉은 얼마 지나지 않아 꽃봉오리를 뱉어냈다. 커다란 꽃봉오리. 그때 시저는 죠셉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죠셉이 뱉어낸 꽃봉오리를 발견할 수는 있었다. 처음엔 상황 파악이 잘 안 된 모양이었지만 이내 시저의 눈이 확 뜨였다. 다시 욱욱대는 소리. 죠셉은 꽃봉오리를 네 개쯤 더 뱉어내고서야 굽혔던 등을 피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뱉어낸 꽃봉오리 다섯 개는 어느새 활짝 피어있었다. 그것은 해바라기였다. 그리고 시저는 그 증상이 뭔지, 저 해바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한순간 머리를 관통당한 느낌이었지만 금세 정신 차리곤 죠셉의 몸을 잡아 돌려 제 쪽을 보게 했다. 죠셉의 눈 꼬리엔 눈물이 맺혀있었다. 붉어진 얼굴과 함께.

 

“너…왜, 그런 거라고 말을 안했지?”


시저가 한 단어 한 단어에 힘을 주어 뱉어내는 소리에 고개를 반쯤 숙인 죠셉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시저가 모두 알아챘다는 것을 깨닫기라도 한 듯, 마치 끝장이라고 생각이라도 하는 듯 반쯤 창백해진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정적. 정적이 벽에 붙은 진흙마냥 천천히 흘러내렸다. 정적을 먼저 지워낸 것은 죠셉이었다. 그제야 입을 열 수 있게 된 듯 시저를 나지막하게 쳐다보았다.

 

“…너는, 내가 이걸 너한테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하냐? 무슨 뜻인지 다 알잖아. 왜 해바라기를 토했는지도 알 거 아냐, 너라면. 그런데 진심으로 내가 말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 얼굴을 마주보던 시저는 하, 하고 짧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몸을 굽혀 죠셉이 뱉어낸 해바라기 중 한 송이를 집어 들었다. 당황한 죠셉의 목소리가 바람 빠지듯 시저, 라고 하며 의문문으로 말을 맺었지만 시저는 다시 일어서 해바라기와 죠셉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그거 전염되는 거야, 멍청한 자식아…대체 뭐 하는 건데?”

“전염 되라고 한 거야. 네가 더 멍청해, 죠셉 죠스타.”


죠셉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지만 시저는 무시하고 해바라기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하늘하늘 내려오던 해바라기는 이내 무사히 바닥에 안착했다.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된 듯 멍하니 떨어지던 해바라기를 바라보던 죠셉은 이내 시저가 멱살을 잡아채는 바람에 어어, 하며 시저를 바라보았다. 당황한 죠셉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시저는 잡은 옷을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확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그리고 맞닿았다. 입술이.


“시. 저?”


크게 뜨인 눈이 시저를 바라보았고, 시저의 눈동자 안엔 그런 죠셉이 담겼다. 이내 상황을 파악한 죠셉은 뭐라 소리쳤지만 시저는 덤덤하게 흘려 넘겼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건 아직 올라왔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울컥할 듯한 느낌과 가슴이 저릿거리는 느낌이 동시에 올라왔다.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감각이었다. 죠셉은 뭔가 심상찮음을 느낀 듯 다시 시저의 이름을 불렀지만 시저는 죠셉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잠깐의 뒤, 시저는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몰랐겠지만, 시저는 죠셉이 느낀 그대로를 느꼈다. 소름끼침, 헛구역질, 괴로움 등. 죠셉이 다시 뭐라 말했지만 시저에겐 들리지 않았다. 모든 감각이 가슴이 저릿해진 원흉을 뱉어내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죠셉은 다시 뭐라 말하다 시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손길은 굉장히 착잡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었다. 시저는 헛구역질을 하는 와중에도 작게 웃었다. 얼마나 그랬을까, 시저가 입 속에서 후두둑 뱉어낸 것은 제비꽃이었다. 죠셉의 색. 죠셉의 꽃. 죠셉의 손이 멈칫했다.


“나, 도…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