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맥스] 남은 것
※맥스가 자폭합니다. 표현 주의.
마디마다 연결된 부위의 틈새 사이로 퍼져나오는 눈부시고 노란 빛은 이내 맥스의 온몸을 감쌌다. 그를 지켜보는 리즈는 이후의 일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강요가 아니었고 마지막 몬스터의 토벌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었다곤 해도, 눈이 찌푸려지는 것 만큼은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곳이 성유계인 것과 그가 오토마타였다는 것을 배제하더라도 그랬다.
잠깐의 고요 이후의 폭발. 한순간에 터져나온 불꽃과 연기가 방사형으로 흩어지면서 앞에 있던 식시귀를 탐욕스럽게 감쌌다. 몬스터는 비명과 함께 불타서 사라져가고, 파편과 조각들이 열풍과 함께 흩날렸다. 지시자를 뒤에 두고 보호하듯 팔을 뻗고 있던 리즈는 무언가가 자신의 장화 앞부분을 친 것을 느끼고 시선을 내렸다.
아마도 맥스의 팔이었을 것이었다. 정확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었던 건 단지 온전한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표면을 이루는 금속이 부분부분 날아가 불타거나 끊어진 인공 근육 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연결부위를 잃은 끝은 스파크를 일으키며 계속해서 자신을 마모하고 있었다. 시선을 조금만 위로 올리면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마냥 사라져있는 몇 손가락과 이어져서 늘어진 회로들이 보여서, 문득 리즈는 메슥거림을 느꼈다.
'고작 기계일텐데.'
그럼에도 이입하게 되는 것은 단순히 그가 사람 형태로 움직이고 자신과 함께 싸우는 동료라서인지에 대해 리즈는 생각했다. 물론 풀릴 일 없는 의문이었다. 리즈는 불과 소란이 잦아들어서야 팔을 내렸다. 지시자가 뒤에서 상체를 기울이는 것이 느껴졌다.
"보지 마라. 맥스……는, 내가 가져올테니."
비록 감정이 없는 인형이었다고는 하나 미처 타지 못한 몬스터의 살점과 맥스였던 것들이 부분부분 퍼져있는 광경을 굳이 보여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리즈는 다시 지시자의 앞을 몸으로 가렸다. 지시자는 리즈를 한 번 올려다보고는 맥락을 이해한 듯 고개를 돌렸다. 한숨을 쉰 리즈는 허리를 숙여 팔이었던 것을 들어올렸다. 자신이 피워올린 불꽃처럼, 열기를 머금은 금속은 따뜻했다.
'단지 내가 이입하기 쉬운 성격이라 그럴지도 모르겠군….'
머리가 복잡했으나 몸을 움직이는 건 별개였다. 리즈는 들고왔었던 상자에 맥스를 이루던 것들을 하나씩 집어넣었다. 아예 조각조각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분류는 제법 간단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되면서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리즈는 마지막으로 남은 머리 앞에 섰다. 섬세하고 복잡한 전자두뇌를 보호하기 위해 제일 단단하게 만든다는 말을 언뜻 들은 적이 있었다. 과연 그 말대로 긁힌 것은 보이지조차 않았지만 안구를 이루는 렌즈만큼은 반쯤 깨져있었다. 아무 빛도 나지 않는 금 간 유리에 항상 보였던 자주빛 보라색의 안광이 잔상처럼 남아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리즈가 양손으로 들어올리자 철걱대는 소리와 함께 목 아래로 중심 뼈대와 회로들이 아래로 내려왔다. 기적에 가까운 기술들의 집합체라 하더라도 단순히 무기로 사용할 뿐이라면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어보더라도 언제나처럼 대답은 들려오지 않을 터였다. 맥스는 말을 하는 일이 없었으니까.
"……이제 됐다."
상자에 아주 조심스럽게 맥스의 머리를 올려놓은 리즈는 지시자를 돌아보았다. 지시자 또한 말없이 몸을 돌려 너머를 바라보았다. 성녀의 저택이 있는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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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맞아주는 것은 역시 브라우와 프람이었다. 수고했다는 말을 손인사로 받은 리즈는 지시자의 곁을 떠나 그대로 워켄을 찾아갔다.
"고치는 건 문제 없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원 상태로 돌아올 거다."
"지금 당장, 완전히 고쳐달라는 것이 아니다. 형태만이라도 대강 맞춰달라는 거야."
작업대 위에 상자를 내려놓자 묵직하게 덜걱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무언가를 확인하듯 안을 몇 번 뒤적이던 워켄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는 기나긴 기다림이 있었다. 앞의 비어있던 의자에 앉은 리즈는 팔짱을 낀 채로 워켄의 작업을 지켜보았다. 대화는 전혀 없었지만 기계가 웅웅거리는 소리가 공간 안을 가득 채웠고, 때로는 작은 불꽃이나 스파크가 튀었다. 섬세한 손놀림이 끊어진 회로를 연결하고 파손된 부위를 붙여나갔다. 기계 뼈대를 중심으로 붙어나가던 회로 기판과 전선들과 인공 줄기들은 어느새 사람에 가까운 형태를 만들고 있었다.
그 뒤로도 꽤 긴 시간이 지나서야 워켄은 긴 숨을 내쉬며 손을 놓고 상체를 들어올렸다. 옆에 있던 간이 콘솔을 조작하자 몇 번의 짧은 소리가 울리더니 무언가 복잡한 화면이 올라왔다. 맥스의 안구 렌즈에 보라색 빛이 띄워진 것을 확인한 리즈는 천천히 기지개를 피며 일어섰다.
"다 된 건가?"
"연결과 기동을 최우선으로 했어. 전원이 끊어지면 바로 꺼질 거야."
워켄은 맥스의 부분부분에 연결된 전선들을 힐끗 바라보았다. 리즈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더 부탁할 일이 없다면 이만 나는 가보도록 하지."
"수고 많았어. 고맙다."
고개를 까딱인 워켄은 작은 발소리를 내며 작업실을 벗어났다. 둘만 남겨진 공간을 잠시간 응시하던 리즈는 이내 고개를 내리고 맥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온전한 형태가 아니었기에 내부의 구조가 드문드문 보이고 있었지만 워켄의 말마따나 확실히 연결은 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도 얼굴 위에 변함없이 올라가있는 가면을 보며 리즈는 자신도 모르게 웃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본인의 일임에도 확신이 아니었던 건 뇌가 묘하게 붕 떠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맥스의 앞에 서면 생각이 많아지기 때문이었을지, 역시 그조차도 알 수 없었다.
리즈는 조금 더 시선을 내려 맥스의 팔을 확인했다. 아까와는 달리 말끔하고 정리된 형태였다. 당연히 추론해낼 수 있는 결과였으나 눈으로 보고서야 안심이 된다는 것은 정말 미묘한 기분이었다.
"…삶이란 건 네게 의미가 없는 건가? 오토마타니까."
마치 잠겨든 것만 같았다. 자폭을 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리즈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내뱉었다. 맥스가 리즈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지만 이후의 반응이 무음일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최초의 이변은 우습게도 전자음이었다. 전혀 생각치도 못한 소리에 의문을 느낀 리즈가 고개를 돌리니, 콘솔 화면의 선이 깜빡이면서 무언가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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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
리즈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고요와 소리가 반복되며 계속해서 똑같은 리듬을 만들고 있었다. 맥스에게 연결된 콘솔이니 분명 표현하고 있는 것 또한 맥스이리라.
"도대체 어떻게?"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리즈는 리듬과 소리의 패턴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변과 함께 온, 언제 끊길지 모르는 소리였으므로. 물론 아직 온전하지 않으니 단순한 오작동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리즈는 한가지 가능성을 떠올리고 있었다.
"기다려봐, 어쩌면…."
콘솔 화면과 맥스를 빠르게 번갈아보던 리즈는 맥스의 팔을 한 번 쥐었다가 놓았다. 여전히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대화가 가능하다면……."
해석이 가능한 엔지니어를 찾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였다. 전자음의 리듬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으니 만약 돌아왔을 때는 정적만이 있더라도 문제는 생기지 않으리라. 이제껏 생각하고 말해왔던 풀릴 일 없던 의문들과 맥스에 대해 생각하면서, 더 지체할 것 없이 리즈는 작업실을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