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게임

[리즈막시] 온도

가또쇼콜라 2019. 9. 11. 02:23

한낮에 내리쬐는 햇빛은 뜨거웠다. 간혹가다 불어오는 바람은 묘하게 습한 감각으로 피부에 달라붙어서 시원함조차 느끼지 못했다. 비록 불을 다루는 능력이 생겼다고는 하나 이전까지 살아왔던 리즈의 삶에는 피가 조금 더 가까웠기 때문에 내성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별로 의미가 없었다. 그러므로 현재의 리즈가 더위를 느끼고 있는 것 또한 당연한 사실이었다.

합동 훈련 중의 휴식시간, 각자 이야기를 나누는 여러 목소리들이 공기중에 섞여 웅성대듯 울리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제복의 단추를 열어두거나 손부채질을 하는 둥 모습들은 비슷한데도 소리만큼은 제각각 다른 것이었다. 길게 숨을 내뱉은 리즈는 걸려오는 말들을 적당히 상대하며 찬 물병을 손으로 쥐었다. 피부로, 너머 아래로 전해지는 냉기에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멌다.


"막시무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면서 부르면 언제나 똑같은 인상이 리즈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리즈는 똑같이 훈련을 했는데도 가만히 있다가 온 사람처럼 완벽한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막시무스가 정말 그답다고 생각했다. 섞이지 않는, 혹은 밀어내고 있는 붕 뜬 모습조차도.


"안 덥냐?"


리즈는 아무렇지도 않게 막시무스의 옆에 앉아서 물병을 내밀었다. 막시무스의 시선이 햇살을 받아 투명하고 푸르게 빛나는 물의 표면으로 넘어갔다.


"괜찮아."

"그럼 됐고."


어깨를 으쓱인 리즈가 더 지체할 것 없이 물병의 뚜껑을 따고 입가로 가져가면 물은 부드럽게 흔들리며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리즈가 열기가 잠깐이나마 가라앉는 감각을 느끼는 동안 막시무스는 그저 힐끗 바라보고 말 뿐이었다. 뚜껑을 돌려놓고 옆에 내려놓은 리즈는 자신도 모르게 긴 소리를 뱉었다. 목소리와 함께 차가워진 숨이 빠져나왔다가 사라졌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자 그제야 조금 기운이 도는 느낌이 들어서, 리즈는 반쯤 구부정한 자세를 한 채로 고개를 돌렸다. 휴식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으나 그동안 막시무스는 홀로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마냥 여전히 90도의 직각 자세였다. 자신도 모르게 바람 빠지는 웃음을 토해낸 리즈는 물병을 쥐었다. 리즈의 손이 도달한 곳은 막시무스가 제 허벅지 위에 얌전히 올려놓고 있던 손 위였다. 평평한 물병 바닥과 차가워진 리즈의 손바닥 옆면이 막시무스의 손등 위에 닿았다. 이번에도 막시무스는 놀라지 않았다.


"뭐 해?"


다만 물어볼 뿐이었다. 물병의 표면에 방울져있던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내려갔다. 톡 튀는 부분적인 차가움에도 막시무스는 동요하지 않았다. 리즈는 당연히 그렇겠거니 했다.


"아니, 뭐…. 안 더워도 시원은 하라고."


사냥하는 고양이가 자세를 낮추고 목표감을 빤히 바라보듯 막시무스의 시선 또한 오래도록 물병을 향했다. 맞닿은 피부의 온도가 어쩐지 서늘한 느낌이어서 리즈는 머리 한구석으로 당연히 거절당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평소라면 안 했을 행동이었지만 이 정도라면 허용해줄지에 대한 의문이 인 탓이었다. 그것이 갑자기 든 것이였는지 오래된 것이였는지는 리즈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저 막시무스의 대답을 기다렸다.


-


"……그래."

"…거절할 줄 알았어."


멀리서 낯익은 목소리가 두 개 들려왔다. 휴식시간이니만큼 다들 제각각의 음역대로 떠들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무언가를 찾는 건 기가 막힐 정도로 잘하는 디노였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언제나 그래왔던 디노를 보며 이데리하는 타고난 운 덕이리라고 생각했지만.


"저기, 리즈랑 막시무스 아냐?"


이번만큼은 아닌 것 같았다. 굳이 저런 분위기를 발견하고 싶진 않았다. 그것도 그나마 친해보이는 두명끼리의 아주 미묘한 그 온도를.


"……우린 우리 할 일이나 하러 가장께."


웬일로 디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끄덕이고, 발걸음을 재촉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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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안격이었던 썰이랑 내용이 너무 달라져서 어쩐지 우정 지켜주는 친구들로 끝나버렸지만 아무래도 좋으려나 싶기도 하네요.......... 얘들아.... 너네 친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