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레] 향
파티가 열리지 않는 여느 때의 평화로운 방과 후였다. 기숙사의 복도를 걷던 트레이가 창으로 힐끗 시선을 주면 청보라 빛부터 시작해 붉은 빛으로 점점 떨어져 내리는, 진한 노란빛이 사이사이로 쌓인 그런 하늘이 있었다. 누가 봐도 감탄이 나올 만한 풍경에 트레이 또한 감상에 잠깐이나마 젖으려던 찰나였다.
불쑥 등 뒤에서부터 손길이 다가왔다. 오른쪽 어깨에 손이 얹히는데도 트레이는 당황하지 않고 옆을 돌아볼 뿐이었다.
"아, 트레이군. 쿠키 만들다 왔구나~."
자연스럽게 다가온 케이터는 시선을 개의치 않고 팔을 트레이의 등에 걸친 채로 몸을 붙였다. 케이터의 얼굴이 트레이의 승모근께에 기울여지면,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드문드문 간지럽혔다. 동시에 케이터가 숨을 들이키고 있는 감각에 트레이가 조금 웃었다.
"그냥 평범하게 말 걸면 안 되는 거야?"
"뭐, 익숙하잖아? 트레이군에겐 제일 먼저 단 향이 나기도 하고."
"그 정도였나…."
잘 모르겠다는 듯 자신의 팔을 코 가까이로 가져다 댄 트레이는 킁킁대며 코를 움직였다. 부드러운 섬유유연제 향 사이로 희미하게 설탕과 구워진 밀가루의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이미 바깥공기를 잔뜩 맞은 후여서 확신을 할 수 없었다.
"모르겠네."
"원래 본인은 잘 모르는 법이라고도 하고."
케이터는 그대로 트레이의 어깨에 턱을 내려놓았다. 폭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주황빛의 곱슬진 머리카락이 흩어지는 감촉에 트레이가 잠깐 동작을 멈췄다.
"베이킹 하는 사람, 솔직히 손에 꼽을 정도 아냐? 여기 일단은 남학교니까 말이지."
새삼스러운 사실의 나열이었다. 한 쪽 눈썹만 찡그린 트레이드 마크 비슷한 표정을 지은 트레이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목덜미 위에서 춤추고 있는 케이터의 옆머리를 한쪽으로 쓸어넘겨 정리했다.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미미하고 뭉근한 바람이 케이터의 귀와 트레이의 손끝을 스쳐지나갔다.
"물론 케-군은 그런 트레이군의 단 내를 좋아해☆"
케이터가 간지러운 듯 조금 작게 웃었다. 그럼에도 빠지지 않는 브이자의 손짓에 트레이는 정말 한결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흘려보냈다.
"뭐야. 너, 단 건 안 좋아하잖아."
"단 것과 단 것 전반은 엄연히 다르다구? 그리고…."
움직이던 케이터의 손이 트레이의 빈 팔뚝 위로 올라가 마치 뒤에서 안고 있는 듯한 형태가 됐다. 케이터가 트레이에게 고개를 더 바짝 붙이자 작고 따뜻하게 닿는 숨결이 뺨의 표면을 타고 흘러갔다. 어쩐지 신경이 곤두설 정도의 긴장이 느껴진다고 문득 트레이는 생각했다. 어쩌면 케이터에게서 은은하게 풍기는 장미향 때문일지도 몰랐다. 혹은 화장품의 향이거나.
"딱히 단 향만 나는 것도 아니니까."
로맨스 영화였다면 키스라도 할 것 같은 긴장감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이었기 때문에 케이터는 웃으며 트레이에게서 떨어졌다. 온기가 떨어진 만큼을 찬 공기가 곧바로 메워버린 바람에 그 부분의 신경이 자연스럽게 곤두섰다. 다행인지 아닌지는 긴가민가했지만, 어쨌든 어깨에 두른 팔은 그대로였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온도차로 몸을 부르르 떤다거나 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나도 줄래? 쿠키. 지금 가지고 있지?"
"그게 목적이었나… 어차피 나눠줄 생각이었으니 별로 상관은 없지만."
그러니 트레이는 다행으로 여기기로 했다. 언제나와 같은 묵직한 온도와 무게에 안정을 가지면 그 뿐이라고 생각했다. 쓸데없는 기대를, 차오르기 시작하는 마음을, 눈에 들어오는 케이터의 장난스러운 미소를… 예쁘게 리본으로 묶은 쿠키 봉지를 자연스럽게 건네주는 동작으로 반쯤 가린 트레이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