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장르/게임

1617 단문

가또쇼콜라 2018. 11. 7. 15:52

2013.05.14




“클레이.”

“DeSmOnD.”

 

힘없이 질질 끌리는 발음을 하며 클레이가 대답했다. 그는 해안가의 돌 위에 앉은 채 멍한 눈으로 파도치는 해안을 보고 있었다. 공허한 눈. 그의 시선은 분명 해안에 닿아 있었는데도 해안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데스몬드는 클레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뭘 보고 있어?”

“기억들. 해변. 애니머스. 혹은…”

 

이어지던 단어들이 중단되자 데스몬드의 눈엔 의문이 담겼다. 클레이는 정적을 잠시 유지시켰다가 데스몬드 쪽으로 고개를 돌려 데스몬드와 시선을 맞췄다.

 

“너.”

 

여전히 공허한 눈길이었지만 아까와는 달랐다. 클레이의 눈 안엔 분명히 데스몬드가 들어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이 괜히 머쓱해져서 머리를 긁은 데스몬드는 클레이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제야 데스몬드의 시선에 맞춰져있던 클레이의 눈이 다시 해변 가로 돌아갔다. 웬지 모르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 데스몬드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쉰 후 이야기를 하려 했으나 그보다 클레이가 입을 연 것이 더 빨랐다.

 

“그러고 보니까.”

“어?”

“오늘이 로즈데이라 하던데.”

 

로즈…데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듯 데스몬드는 머릿속으로 단어를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생각해보니 그런 날도 있었지…의외라는 눈길로 데스몬드가 클레이에게 대답했다.

 

“그런 날에 관심도 있었어? 의미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놀고, 배우고, 기다리는 동안, 그동안 내게 없는 것들을 생각했어. 하지만 나 자신에게 장미는 줄 수 있었지. 기억. 생각. 상상.”

 

담담한 말투로 클레이는 제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오른 검지와 엄지가 장미 꽃잎을 만지는 듯 섬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애니머스 밖에서 장미를 마지막으로 봤던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아.”

 

섬세하게 움직이던 손은 꽃을 없애버리려는 듯 꽉 움켜쥐는 형태로 변했고,

 

“장미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아. 단순한 이름과 형태로 내게 기억되어 있어. 빨간 꽃에 초록색 줄기, 잎, 가시…그 뿐으로만.”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힘을 주어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클레이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오히려 데스몬드가 놀라서 클레이의 손을 붙잡은 후 주먹 쥔 것을 억지로 펴게 했다.

 

“그러다 피 나!”

 

클레이가 주먹에 상당히 힘을 주고 있었기에 간신히 클레이의 손을 펴게 할 수 있었고, 펼쳐진 손을 바라보던 클레이는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데스몬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난 데이터베이스야. 디지털 구조. 가짜라고.”

 

데스몬드가 뭐라 반론하려 했지만 그것은 사실이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클레이…라고 한 마디를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고, 클레이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어느새 생겨난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왼 손에 쥐었다.

 

“만약에 피를 흘려도 기본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된 프로그래밍대로 피가 흐르는 것을 재현할 뿐이야.”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유리조각이 오른 손목 어딘가로 와 닿게 하고 꾹 누르기 시작하자 데스몬드는 황급히 일어서서 클레이의 왼 손목을 잡았다.

 

“그만둬, 클레이.”

“걱정하는 거야?”

 

클레이는 놀란 눈으로 데스몬드를 쳐다보다가 왼 손에 힘을 빼서 잡고 있던 유리조각을 떨어트렸다. 해변의 모래에 챙 하는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유리조각이 안착하자 데스몬드는 그제야 클레이의 손목을 놔주었다. 잡혔던 손목을 바라보며 왼쪽 손을 쥐었다 폈다 한 클레이는 다시 데스몬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데이터베이스에게 걱정을 해 주는 거야?”

“클레이……”

“넌 진짜인데도?”

 

비수를 꽂는 것 같은 말에 데스몬드는 클레이의 시선을 피했다가 하지만, 클레이…라는 말과 함께 클레이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으려 했지만 그러기도 전에 클레이는 이미 조각 조각나서 사라지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있던 유리조각도 함께.

클레이의 어깨 위에 올려놓으려 했던 손을 주먹을 쥐어서 떨어트린 데스몬드는 슬픈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미안해.”

 

어째서 나왔는지 모를 사과의 말과 함께 숨결을 내뱉은 데스몬드는 공중으로 올라가 말과 숨결이 흩어지는 것 같다고 느꼈다. 자신은 그에게 닿을 수 없었다. 방금 자신이 내뱉은 말처럼.

 

 

'장르 > 게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디웨일런 단문  (0) 2018.11.07
월라마일 조각  (0) 2018.11.07
[에디웨일런] 사랑의 결실  (0) 2018.11.07
쟈크배터 조각  (0) 2018.11.07
[레오에지오] Drawing  (0) 2018.11.07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TAG
more
«   2025/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