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가 열리지 않는 여느 때의 평화로운 방과 후였다. 기숙사의 복도를 걷던 트레이가 창으로 힐끗 시선을 주면 청보라 빛부터 시작해 붉은 빛으로 점점 떨어져 내리는, 진한 노란빛이 사이사이로 쌓인 그런 하늘이 있었다. 누가 봐도 감탄이 나올 만한 풍경에 트레이 또한 감상에 잠깐이나마 젖으려던 찰나였다. 불쑥 등 뒤에서부터 손길이 다가왔다. 오른쪽 어깨에 손이 얹히는데도 트레이는 당황하지 않고 옆을 돌아볼 뿐이었다. "아, 트레이군. 쿠키 만들다 왔구나~." 자연스럽게 다가온 케이터는 시선을 개의치 않고 팔을 트레이의 등에 걸친 채로 몸을 붙였다. 케이터의 얼굴이 트레이의 승모근께에 기울여지면,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드문드문 간지럽혔다. 동시에 케이터가 숨을 들이키고 있는 감각에 트레이가 조금 웃었다. "그냥..
"아, 여기다. 트레이군, 내가 말했던 요즘 마지카메에서 뜨고 있는 카페. 바다 테마의 디저트가 인기래." "저건 수족관인가? 작긴 해도, 도시에선 흔치 않은 풍경이군." "분위기는 중요하니까. 특히 SNS 저격용 카페라면 말이야." 케이터가 유리문을 당기면 위에 달린 고래 모양의 종이 흔들리며 딸랑, 하고 맑은 소리를 냈다. 트레이가 테마에 충실한 카페라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푸른 빛이 눈에 띄었다. 은은한 파란색 그라데이션의 벽에 장식되어있는 작은 수족관들. 그 안의 화려한 물고기들. 진주알같은 조명. 색색의 원형 테이블과 전체적으로 조개 모양을 한 소파 형태의 의자. 하나둘씩 앉아 이야기를 하거나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확실히 한 번 정도는 와보고 싶을지도 모르겠네...
허공을 산뜻하게 내려온 페르소나 카드를 손으로 쥐면 사탕같이 얇은 유리막이 한순간에 부서졌다. 맑은 파열음, 그와 동시에 소환되는 이자나기라는 이름의 인격의 갑옷은 일련의 행동을 취했다. 쉐도우에게 소유자의 정의처럼 청명하고 푸른 전격이 내리꽂히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비명인지 무엇인지 모를 소리가 바람처럼 새어나왔다. "어." 쉐도우를 물리치고, 바람에 날아가는 먼지더미처럼 형체를 잃어가는 것 사이에서 작은 보석을 찾아내고, 뒤돌아선 던전 안쪽에서의 여느 때. 먼저 목소리를 낸 건 요스케였다. "파트너, 여기." 유우가 돌아보자 요스케는 말 대신 검지로 뺨을 가리켰다. 그것을 지표로 해서 손끝으로 더듬더듬 뺨을 눌러보면 조금 따끔해서 유우는 자신도 모르게 한쪽 눈을 찡그렸다. 빠르게 손을 뗐지만 아직 까..
※C루트 스포 주의※표현 주의※이걸 도윤규혁이라고 할 수 있느냐와는 또 별개로 저는 진짜로 캐릭터들을 사랑합니다. . . . . .※이건 주의는 아니고 미리보기에 본문 내용 나오는걸 막기 위해 무언가 쓰는 중 왜 규혁이 형이야? 어째서 ■■■■으로 나타난 거냐고…!…네가 바랐으니까. 그래서 ■■■인 거야.내가… 바랐기 때문, 이라고?■■■■■■ 네 마음에 따라 현신했어. 도윤이 끝내 다다른 폐허의 지하에는 규혁이 있었다. 언제나와 다르게 등을 돌린 모습이었다. 이상현상과 공포 자체에 좀먹혀들어가던 도윤은 그것만으로도 큰 불안을 느꼈다. 느낄 수밖에 없었다. 글자를 조합하고 문장을 만들어 정성스레 발음하는 것보다는 생각이 뇌 표면에 떠오르는게 훨씬 빨랐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자 어쩌면 ..
한낮에 내리쬐는 햇빛은 뜨거웠다. 간혹가다 불어오는 바람은 묘하게 습한 감각으로 피부에 달라붙어서 시원함조차 느끼지 못했다. 비록 불을 다루는 능력이 생겼다고는 하나 이전까지 살아왔던 리즈의 삶에는 피가 조금 더 가까웠기 때문에 내성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는 별로 의미가 없었다. 그러므로 현재의 리즈가 더위를 느끼고 있는 것 또한 당연한 사실이었다.합동 훈련 중의 휴식시간, 각자 이야기를 나누는 여러 목소리들이 공기중에 섞여 웅성대듯 울리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제복의 단추를 열어두거나 손부채질을 하는 둥 모습들은 비슷한데도 소리만큼은 제각각 다른 것이었다. 길게 숨을 내뱉은 리즈는 걸려오는 말들을 적당히 상대하며 찬 물병을 손으로 쥐었다. 피부로, 너머 아래로 전해지는 냉기에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
※맥스가 자폭합니다. 표현 주의. 마디마다 연결된 부위의 틈새 사이로 퍼져나오는 눈부시고 노란 빛은 이내 맥스의 온몸을 감쌌다. 그를 지켜보는 리즈는 이후의 일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강요가 아니었고 마지막 몬스터의 토벌을 위해 필요한 작업이었다곤 해도, 눈이 찌푸려지는 것 만큼은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곳이 성유계인 것과 그가 오토마타였다는 것을 배제하더라도 그랬다.잠깐의 고요 이후의 폭발. 한순간에 터져나온 불꽃과 연기가 방사형으로 흩어지면서 앞에 있던 식시귀를 탐욕스럽게 감쌌다. 몬스터는 비명과 함께 불타서 사라져가고, 파편과 조각들이 열풍과 함께 흩날렸다. 지시자를 뒤에 두고 보호하듯 팔을 뻗고 있던 리즈는 무언가가 자신의 장화 앞부분을 친 것을 느끼고 시선을 내렸다.아마도 맥..
막시무스 칸토어는 생각에 잠겨있는 일이 많았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느끼기로는 그랬다. 필요한 정보를 모으고 있는 것을 타인들이 멋대로 오해하고 있는 것 뿐이었지만, 당연하게도 해명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으므로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러니까 남들에게는 오늘도 막시무스가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었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니, 편리하지만 번거롭고 불편해.' 노을 지는 하늘 아래, 훈련장의 적당한 구석 나무쪽에 앉아 정보를 취득하고 엔지니어들의 동향을 대략적으로 파악하려던 막시무스는 문득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웬만한 사람들은 거의 식당에 있을 시간이니 당연했다. 건물 밖에 있는 본인을, 이 장소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단절된 개체라고 칭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연결된 것은..
비록 기계라곤 했으나 항상 거리낌없이 자폭을 해내는 맥스를 보며 리즈는 기묘한 거리감을 느끼곤 했다. 이상할 정도로 낯익은 검술이, 그럼에도 모조품일 뿐이라는 생각이 그랬다. 자신이 불꽃을 피워내고 그려낼 때, 그것을 단숨에 확장시켜 폭파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가깝고도 멀었기 때문에 리즈는 항상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영문을 알 수 없음에도 묶여진 인연에 대하여.물론 의문을 가진다고 한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시자가 인도하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몬스터를 베어 쓰러뜨리며 자신들에게 필요한 조각을 되찾는다. 따로 되새길 필요도 없었다. 리즈에게 있어 이제는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었으나, 그럼에도 가끔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그렇게 반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