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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기다. 트레이군, 내가 말했던 요즘 마지카메에서 뜨고 있는 카페. 바다 테마의 디저트가 인기래."
"저건 수족관인가? 작긴 해도, 도시에선 흔치 않은 풍경이군."
"분위기는 중요하니까. 특히 SNS 저격용 카페라면 말이야."
케이터가 유리문을 당기면 위에 달린 고래 모양의 종이 흔들리며 딸랑, 하고 맑은 소리를 냈다. 트레이가 테마에 충실한 카페라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푸른 빛이 눈에 띄었다. 은은한 파란색 그라데이션의 벽에 장식되어있는 작은 수족관들. 그 안의 화려한 물고기들. 진주알같은 조명. 색색의 원형 테이블과 전체적으로 조개 모양을 한 소파 형태의 의자. 하나둘씩 앉아 이야기를 하거나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확실히 한 번 정도는 와보고 싶을지도 모르겠네."
"그렇지? 그러니까 이렇게 트레이군이랑 왔잖아."
케이터가 가방을 내려둔 적당한 자리의 맞은편에 트레이가 앉았다. 겉옷을 벗고 옆의 의자에 걸어두며 의자가 의외로 푹신한 감촉이라고 생각했다.
"트레이군, 뭐 마실래?"
"나는…너, 컵케이크 시킨댔지. 그러면 히비스커스 티."
"오케이. 가방 봐줄래? 금방 시키고 올게."
걸어가는 케이터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트레이는 문득 카운터 쪽에 있는 커다란 메뉴판에도 산호초 모양의 장식이 붙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자기도 모르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가볍게 웃다보면 새삼스러운 생각이 났다. 자신은 지금 케이터와 외출을 나온 것이라는.
경위라고까지 표현할만한 거창한 건 없었다. 다만 제의를 받았다. 이번 주말에 같이 카페 순회를 가지 않겠냐는 케이터의 말에 트레이는 그렇다면 호박 퓨레도 사러 가자고 답했을 뿐이었다.
"같이 나온 거, 오랜만이네."
생각에 잠겨 있느라 아직도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트레이는 헛기침을 하며 주문을 마치고 돌아온 케이터의 얼굴로 눈을 돌렸다. 앞의 의자에 앉은 케이터는 어느새 턱을 괸 채로 트레이를 보고 있었다.
"타이밍이 좋았다고 생각해. 아무 것도 아닌 날의 파티 케이크 아이디어도 부족했었거든."
"그건 얘기했으면 도와줬을텐데. 이번에도 '생각했지만 말 안했어'야?"
"나도 너한텐 이래저래 도움 받고 있는 입장이니까."
케이터의 눈이 조금 크게 뜨였다. 이어 나온 말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급하게 일 시키는 걸 나름 미안해하고 있다는 뜻?"
"나를 대체 뭘로 보고 있는 거야."
"아하하."
"웃지 마."
그렇게 말했지만 트레이도 케이터를 따라 웃었다. 애초에 가볍게 나온 말이었으니 그 분위기가 이어질 뿐이었다.
"162번 손님! 주문 나왔습니다!"
"앗, 우리 거."
"내가 갈게."
케이터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트레이가 먼저 일어섰다. 그러면 케이터는 입을 다물고 그냥 손을 휘적이듯 흔들었다. 트레이는 카운터에 이어진 픽업대로 걸어가며, 마치 바다에 잠겨드는 것 같은 감각이 든다고 생각했다. 묘하게 일렁이는 기분 탓일지도 몰랐다.
넓은 사각형의 손잡이가 달린 쟁반을 양 손으로 들고 다시 되돌아오면 케이터가 그 위의 것들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파란 색과 하얀색이 섞여 파도 같은 형태의 크림 위에 설탕으로 만든 것 같은 색색의 소라 껍데기가 올려져 있는 적당한 크기의 컵케이크를 본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었다. 트레이는 붉돔과 바다거북 모양의 아이싱 쿠키를 보고는 또 조금 웃었다.
"서비스라더라."
"딱 마지카메 업로드 용이란 느낌이네. 귀여워~!"
핸드폰을 들어올린 케이터가 익숙하게 사진을 찍으면 트레이는 익숙하게 기다렸다가 유리 찻잔을 자신 쪽으로 끌어왔다. 가볍게 출렁이는 붉은 빛 수면의 움직임을 따라 띄워진 꽃이 흔들렸다.
"케이터 건 뭐야? 커피인가?"
"카페라떼야. 주변은 온통 푸른 색인데 이것만 갈색이니까 어쩐지 섬 같지 않아?"
"표류라도 하고 있는 것 같은 말을."
"아하하, 트레이군은 나랑 단 둘이 남는 게 꿈?"
가벼운 웃음소리가 지나갔다. 케이터가 입가에 가져다 대려던 파스텔 톤의 머그잔을 자연스럽게 가져온 트레이는 커피 위에 자신의 차에 얹어져있던 꽃을 올렸다. 히비스커스는 당연하게도 붉은 빛이었다.
"그것도 괜찮겠네."
"엣."
트레이는 크게 뜨인 눈동자에서 오는 선명한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내며 다시 케이터의 손에 머그잔을 쥐여줬다. 스쳐지나간 온기가 오래도록 표피에 머무르는 느낌이었다.
"뭐야. 이상한 얼굴을 하고."
"그 정도였어?! 트레이군 대답이 예상 밖이었을 뿐이라구."
"재난은 혼자 당하는 것보다 둘이 당하는 게 나을 테니까 말이지."
"재난이라니, 그거 꼭."
뒷말을 이어가려던 케이터가 입을 다물자 트레이는 의문을 담고 케이터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또다시 교차되고, 정적 상태의 두 사람에게 주변의 대화 소리가 밀려들어왔다. 그 속에서 케이터는 생각했다.
'…사랑 같지 않아?'
당사자들에겐 온전한 의미로 전달되었을 문장들이 케이터에겐 뭉뚱그려진 글자들처럼 형태를 잃고 그저 목소리만을 남긴 채였다. 마치 목소리의 파도 한가운데에 있는 것 같았다. 정작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는 통상적인 바다의 이미지와는 정 반대인 숲의 색이라는 점을 케이터는 묘하게 느꼈다.
케이터가 의도를 읽어내려 열심히 생각하던 도중, 먼저 의식을 건져낸 건 트레이였다.
"말을 하다 말고. 케이터, 어디 안 좋아?"
당연했다. 사람은 독심술을 할 수 없으니까. 그제야 케이터는 정적이 부자연스럽게 길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아니, 별 건 아냐…"
물론 별 것도 맞았다. 그렇지만 아직 곧이곧대로 말할 생각도 없었으므로, 빠르게 눈동자를 굴린 케이터는 손을 슥 내밀었다. 바다거북 모양의 쿠키를 집으면 트레이의 얼굴에 의문이 한층 더 짙어졌다.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전환이었으나 케이터는 뻔뻔스러운 태도를 고수하기로 했다. 아직 확신할 수 없을 의도를 잠깐이나마 저 멀리로 밀어두고, 준비가 되지 않은 마음은 아래로 묻어두는 과정과 함께 동시에 말을 이었다.
"…트레이군도 먹을래? 쿠키."
트레이는 무언가를 가늠하는 눈빛으로 케이터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커피 위의 히비스커스로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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