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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0
연말, 거리가 사람으로 가득 차 모두가 시끄러워지고 기대를 가득 품게 되는 날이었다. 누군가는 내일을 꿈꾸고 또 누군가는 소원을 빌 테였다. 아무렇지도 않거나 새로운 희망에 차거나, 무사히 내년을 맞았다는 안도감을 갖거나. 이매지네이션이 풍부해지는 얼마 안 되는 날 중 하루이기도 했다. 레인보우 라인이 힘을 얻는 날, 크리스마스에 이어 여유가 생겼다고 말하는 차장의 얼굴은 퍽 즐거워보였다. 그 뒤에서 카트에 귤을 잔뜩 담아 가져온 왜건은 곧 격렬하게 나이를 먹는 날이니 거울떡은 어떻겠느냔 얘기를 넌지시 던졌고, 열차 안은 금세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라이토의 목소리가 제일 컸단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일이겠지만 어쨌든간에. 왜건이 나눠준 귤이 새콤한 주황빛으로 반짝이는 걸 맛있겠다고 외친 라이토의 말을 받은 카구라가 귤 색이 아키라 같다며 웃는 걸 기점으로 열차 안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을 때 느긋하게 달리던 열차가 어느 순간 멈췄다. 이내 울리는 기내 방송 소리,
[이번 역은 희망, 희망 역입니다.]
티켓의 목소리였다. 이미 귤을 까놓고 한가득 입에 물고 있던 라이토가 벌떡 일어나자 무릎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있던 담요가 바닥까지 떨어져내렸다. 같은 담요를 덮고 있던 토캇치의 무릎에서도 강제로 탈출된 담요를 안쓰럽다는듯 주운 미오는 이내 카구라가 나가자며 손을 잡아오는 걸 보곤 웃어주었다.
"오늘도 신년까진 정차할테니 기왕이면 잔뜩 즐기다 오세요. 다만 너무 늦기 전까진,"
"겨울엔 소바! 난 메밀 소바 먼저 먹을래!"
"잠깐, 라이토!"
차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뛰쳐나가는 라이토를 황급히 쫓아간 토캇치와 즐겁다는 듯 뒤늦게 뛰어나가는 카구라와 미오, 그들의 모습을 보다가 왜건과 차장에게 인사하고 나오는 히카리의 뒷모습까지 본 차장은 결국 못 말린다며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지만 왜건은 그걸 듣기나 한건지 정말이지 격렬한 청춘이라며 쓰러지는 척을 할 뿐이었다.
-
여러가지로 가득한 도시의 시내를 걷는다는 건 토큐쟈에게도 굉장히 설레는 일이었다. 마침 휘날리는 눈발은 많은 색으로 찬 거리를 흰 빛으로 장식하고 있었기에 카구라는 손으로 눈을 가득 쥐곤 예쁘다며 웃어보였다.
"손 차가워져, 카구라."
"그렇지만 히카리! 이렇게 예쁜걸?"
카구라가 모인 양 손을 하늘로 높이 벌리자 모였던 눈은 흩날리듯 바람을 타고 날았다. 손바닥에 닿았던 눈은 어느정도 녹아 덩어리진채 떨어져 내렸지만 그렇지 않은 결정들은 소매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고, 그것은 미오의 시선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기 눈이 붙었다며 분홍색 케이프를 쥐고 들여다보는 미오의 얼굴은 미소가 가득했다. 토캇치도 따라 웃다가 눈사람을 만들 생각을 하고, 히카리는 어느새 사라진 라이토를 찾으려 고개를 돌리던 찰나였다.
"앗, 여기 여기!"
라이토의 다급한 목소리에 먼저 고개를 돌린 토캇치가 가장 먼저 본 것은 흰색이었다. 어라, 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 얼굴이 매우 차갑다는 걸 깨달은 토캇치는 당황한 소릴 연달아 뱉으며 황급히 양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손바닥에 안경이 걸려 불편하긴 했지만 쓸려나오며 묻는 차가운 감촉은 분명 눈이었다. 그제야 토캇치는 자신이 눈뭉치에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라이토?!"
토캇치가 안경 렌즈에 묻은 물과 눈을 대충 닦아내자마자 이번엔 히카리에게 눈뭉치가 날아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히카리의 왼쪽 어깨로 날아온 눈은 퍽 소릴 내며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히카리가 눈이 날아온 쪽으로 휙 고갤 돌리자 당연히 그 끝엔 장난기로 가득 차 웃고 있는 라이토가 있었다. 라이토가 큼직하게 양 팔을 흔드는 걸 보며 히카리는 양 미간을 좁혔다.
"라이토…해보자는 거야?"
낮게 읊조리듯 말한 히카리는 허리를 굽혀 눈을 가득 뭉치고 라이토에게로 다리를 뻗어 달려갔다. 갑작스레 달려들 줄은 몰랐던 듯 놀란 표정을 지은 라이토도 달리기 시작하긴 했지만 이미 제법 가까워져 있었기에 라이토가 완전히 등을 보였을 때 히카리는 눈뭉치를 던졌다. 그리고 히카리가 또 눈뭉치를 맞은 건 그 직후의 일이였다.
"히카리, 빈 틈!"
넘어질 뻔 해서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뜬 히카리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을 때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카구라였다. 눈이 마주치자 미오의 뒤로 숨긴 했지만 손에 눈이 잔뜩 묻어있는 걸 보니 이번엔 카구라구나 싶었다. 히카리가 뱉어내는 한숨에 허탈한 웃음이 섞여나왔다.
"나이스, 카구라!"
그런 히카리를 보며 하이파이브라도 하듯 오른쪽 손을 뻗어올린 라이토에게 눈뭉치가 날아왔다. 정확히는 두개였다. 하나는 토캇치로부터, 하나는 미오로부터. 라이토! 라는 외침과 함께, 그만 하라는 뜻이었겠지만 묘하게도 그걸 시작으로 제대로 눈싸움이 시작되어버려 결국 그들은 한참동안을 눈에 파묻혀 있다시피 해야 했다. 던져대는 눈뭉치들이 한 순간도 멈추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
"추워-!!"
흰 입김을 뿜어내며 파래진 입술로 소리친 라이토는 제 양 팔을 끌어안고 비볐다. 다른 이들도 비슷하긴 했지만 라이토는 유독 추워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모두에게 눈뭉치 집중 포격을 받은 이는 라이토였기 때문이었다. 승자는 없었지만 유일한 패자가 있었다.
"이래서야 제대로 돌아다닐 수나 있겠어?"
히카리가 아직 옷에 눈이 붙은 라이토를 보며 중얼거리듯 말하자 라이토는 굉장한 걸 깨달았다는 듯 빙글 돌아보았다.
"그러고보니까 아직 밥 안 먹었네? 배고파졌어!"
그러면서 눈으로 잔뜩 뒤덮인 야구잠바를 탈탈 손으로 털자 그만큼 눈이 쏟아져내렸다. 감탄의 눈으로 쳐다보던 카구라는 손을 번쩍 들었다.
"난 케이크 먹고 싶어!"
"그건 식사가 아니잖아? 오니기리도 좋을 것 같아."
"아, 나는…"
"메밀 소바!"
"샌드위치면 충분해."
의견이 갈라져도 너무 갈라져서 서로 멍하니 쳐다만 보는 이들을 보다 한숨을 쉰 히카리는 찢어지자고 제안했다. 아, 하는 표정을 지은 토캇치가 동의하며 그럼 레인보우 열차에서 만나자고 말을 덧붙이자 구경은 적당히 하라고 미오가 거들었다. 있다 보자는 카구라의 쾌활한 외침에 라이토는 손을 흔들었다. 너무 늦게 오지 말라고 말하는 건 모두가 같았다. 이내 그들이 떠나간 거리에는 왁자지껄함도 같이 사라졌다. 남은 건 역시 아직도 내리는 눈 뿐이었다.
-
"잘 먹었습니다!"
라이토가 반갑게 인사를 하며 음식점 문을 열고 나온 순간 훅 끼쳐온 것은 한겨울의 칼바람이였다. 저도 모르게 눈을 감으며 앓는 소릴 낸 라이토는 뿌연 입김을 뱉어내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따뜻한 가게 안에 있다가 갑자기 찬바람을 맞는 건 역시 추웠지만 배가 부르니 아무래도 좋다는 느낌이여서 라이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에 걸곤 길을 따라 걸어갔다. 아직 돌아가고 싶진 않아 일부러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했지만 가는 길마다 외우면 돌아가는 길도 떠오를테니 괜찮을 것이라고까지 생각한 라이토가 공원에 심긴 나무들 사이로 접어들 즈음이었다. 땅으로 간 시야에서 가장 처음 보인 것은 짙은 그림자였다. 라이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림자의 시작을 쳐다보았다. 새까만 동공과 마주한 순간이였다.
"여, 라이토."
흩날리는 눈발만큼이나 하얀 옷을 입은 제트임을 알아챈 라이토는 퍼뜩 놀라 크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신발 바닥에 언 눈이 닿아 뽀드득 하는 소리가 났다.
"제트! 네가 왜,"
"왜냐니."
어깨를 으쓱인 제트는 허리를 굽히고 눈을 한가득 제 손 위에 올렸다. 햇빛이 반사되어 별가루마냥 반짝이던 것들은 이내 바람을 맞고 흩어졌지만 그만큼 아름다웠기에, 빛이 흩뿌려지는 것을 내려다보던 제트는 까딱이며 고개를 들어올려 라이토에게 시선을 두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서? 너희들이 흔히 말하는. 연말이라던가."
"뭐?"
"난 어둠의 황제야. 그 정도도 모를 리가 없잖아?"
씩 웃은 제트는 라이토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그럼에도 라이토는 경계할 뿐이고, 뒤로 물러난다거나 하는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다만 팔을 들고 있는 걸 보니 언제든 변신하려는 것 같았지만 글쎄, 제트는 딱히 싸울 마음은 없었으므로 손을 털어내 눈을 전부 흩뿌리곤 손바닥을 보이며 양 손을 가볍게 들어올린 채 다시 한 발짝을 걸었다.
"오늘따라 유독 반짝이더군. 눈이, 사람들의 눈도. 크리스마스 때 같았어. 사방에 반짝임이 가득했지."
제트의 낌새를 살피는 듯 도르륵 굴러가는 눈동자가 너무 티나게 보여 제트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살짝 아래로 숙였다. 눈가에 지는 그림자가 표정을 가려줄까 싶어서, 어쩌면 우스웠을지도 몰랐다. 또 한 발짝. 그러나 불안정한.
"내가 전부 가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내 손에 가득히, 어둠을 전부 빛으로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제트의 손바닥이 보이던 것이 갑자기 사라지며 쥐여진 손가락만이 보였다. 무언가를 훅 움켜쥔 듯 필사적으로 쥐고 있는 오른손은 도무지 펴질 생각을 않는 듯 했다. 적어도 라이토가 보기엔 그랬다. 왼손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지만 오른손은 그러질 않은 채로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질 때, 순간 제트의 시야가 빙글 돌았다.
"너도 마찬가지야, 라이토. 난 욕심이 아주 많거든…."
죽기 직전의 사람이 마지막 숨을 흘리는 것마냥 제트의 입에선 멋대로 말이 나왔다. 뇌를 거치지 않고 목으로 바로 흘려낸 말을 끌어안듯 움켜쥔 손을 왼 가슴에 갖다댄 제트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어느 순간부터 위태롭게 비틀거리던 몸이 순식간에 무너져 잔뜩 쌓인 눈 위로 엎어졌다. 워낙에 눈이 잔뜩 쌓인 탓에 쿵 하고 울리는 소리보단 사이사이에 먹혀들어갔다고 표현해야 옳을 작은 소리가 났지만 어느쪽이던 라이토가 놀라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면서도 연기가 아닌가 순간 고민한 라이토였지마는 이내 그는 팔을 내리고 제트에게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제트!!"
자연스레 터져나온 외침과 함께 한쪽 무릎을 꿇어 제트의 머리 옆쪽에 자리잡은 라이토는 양 손을 어깨에 대고 흔들었다. 하지만 제트는 미동조차 없이 그저 그채로 누워있을 뿐이었다. 흔드는 대로 흔들리는 것이 잠을 자는 건지 기절한 건지 도무지 분간이 가질 않는데다가 그럴 린 없지만 혹시 몰랐기에 라이토는 우선 제트의 몸을 빙글 뒤집었다. 눈이 온몸에 잔뜩 묻어 우스을 법도 했지만 시선이 고정된 라이토에게는 웃음이 나오지 않는 채였다. 오히려 진지한 축일 것이었다. 그의 손은 얌전히 눈을 털어주며 조심스레 움직였다. 대강 눈을 털어낸 라이토는 언젠가 들었던 수업을 떠올리며 검지와 중지를 붙여 제트의 코 바로 밑에 가져다댔다. 분명히 느껴지는 바람은 제트가 살아있다고 얘기해주고 있었다. 라이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가 이내 흠칫하고야 말았다. 복잡한 눈으로 제트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라이토는 제트의 양 팔을 잡고 제 가슴에 기대게 세운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로 보이는 벤치가 있어 그쪽까지 제트를 질질 끌듯 데려온 라이토는 크게 푸하 숨을 내쉬곤 벤치의 눈을 털어낸 뒤 제트를 먼저 앉혔다. 하지만 등받이가 낮아 뒤로 넘어가는 상체에 놀라 서둘러 자기도 앉은 라이토는 제트의 머리가 제 어깨에 기대어지게 만들곤 다시 숨을 뱉었다. 이번엔 정말로 한숨이었다. 이게 대체 어쩌자는 건지 라이토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역시 분명한 건 제트가 방심한 지금 이대로 쓰러트린다면 마을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 또한. 거기까지 생각한 라이토는 토큐 체인저가 감긴 팔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1호 열차가 쥐인 손은 망설임이 듬뿍 담겨 손가락이 표면만을 건드리고 있었다. 찬바람을 맞은 열차는 역시 차가웠다. 이대로 변신해버리는 건 큰 아이가 땅을 디디고 서는 것보다도 쉬운 일이었는데 어째서 망설여지던건지, 자기가 이상하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한참이나 토큐 체인저와 제트를 번갈아본 라이토는 결국 팔을 내리고 등받이에 등을 폭 기댔다. 등받이에 쌓인 눈이 야구잠바에 닿아 뽀득거리는 소릴 냈다. 동시에 반동 때문이었는지 제트의 머리가 라이토의 어깨에서 떨어져 배에 가까운 허벅지에까지 내려왔다. 갑자기 떨어진 무게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금세 진정될 것이었으므로 라이토는 어쩔까 고민하다 제트의 머리를 조심스레 밀어 편하게 허벅지에 닿게 만들곤 고개를 숙여 제트를 내려보았다. 괴로워하는 듯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지만 무슨 일인지 짐작은 가지 않아 바라볼 뿐이었다. 혹시 꿈을 꾸는 건가, 쉐도우 라인의 그들도? 나는 왜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지? 올라간 고개와 빠져나오는 한숨, 그걸 쉰 만큼 하얗고 뿌연 김이 나와 시야를 가리기에 라이토는 이게 제 심정인가 싶었다. 갑갑했다.
"아. …슬슬 돌아가야 하는데."
물을 바르고 수채화 물감에 또 물을 잔뜩 섞어 칠해놓은 듯한 흐릿한 잿빛 하늘을 보다가 문득 생각난 것은 그것이었다. 펑펑 내리는 눈이 눈에 닿을 때마다 따끔거려서 눈을 아예 감아버리자 레인보우 패스로 시간을 확인할 마음도 사라져서 라이토는 한동안 하늘에 감은 시선을 두고 있었다. 어느정도는 늦어도 괜찮겠지 싶었다.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자기합리화를 할 때 빛의 형태는 라이토의 눈 속에서 뒤죽박죽 움직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진 몰랐지만 어느새 귀가 차가워져서 손으로 제 귀를 덮을 무렵이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손가락 사이사이로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비록 작은 노래였지만 라이토는 옛날부터 자주 부르던 노래였기에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감고 있던 눈을 뜨고 고개를 내리자 금세 라이토쪽을 보고 있는 제트와 눈이 마주쳐 라이토는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가 깬 거냐고 물었다. 제트는 손등으로 제 눈을 덮었다.
"왜 오래 있을 수가 없는걸까. 반짝임 속에서."
대답을 바라지 않는 혼잣말이었기에 라이토는 대답하지 않고 가볍게 근처를 둘러보았다. 얼마나 앉아있었다고 눈이 또 서로의 몸에 어느정도 쌓여 있었다. 또 눈싸움 하면 재밌을텐데, 그렇게 생각한 라이토는 제 몸을 우선 털고 제트를 다음으로 털었다. 눈이 사방에 날리지 않게 조심조심 터느라 몸 위에 손이 닿자 제트의 눈을 가리고 있던 손등이 치워졌다. 빼꼼히 올라온 눈이 다시 저를 향해있는 것에, 문득 라이토는 섬뜩하단 감각을 본능처럼 느꼈다.
"뭐 하는 거야?"
"눈, 쌓였으니까. 눈사람이 될 것 같아서."
"특이하다고, 너."
날 쓰러트린다며. 뒤이어진 말에 라이토는 대답할 수 없었다. 시선을 피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제트는 씩 웃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특별한거야."
영문 모를 말의 의미를 묻기도 전에 제트가 먼저 라이토의 다리에 베고 있던 머리를 떼고 일어서는 바람에 라이토는 눈을 두어번 깜빡였다. 완전히 땅에 발을 딛고 일어선 제트는 라이토를 돌아보았다.
"가질 수 없는 건 욕심이 나는 법이야. 아니, 가질 수 없으니 더 확실히 가져야겠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쉐도우 라인에서도 반짝였으면 좋겠다고. 언젠가, 비교적 가까운 조만간."
제트가 내민 검지의 끝은 틀림없이 라이토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라이토는 용납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한 채 주먹을 꽉 쥐고 있을 뿐이었다.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호오."
말 끝이 길게 내뱉어지며 떨렸다. 무엇에 대해 떨린건지 제트는 알 수 없었기에 일부러 스스로도 모르는 척을 하곤 라이토를 본 채로 뒤로 몇 걸음을 걸었다. 눈을 밟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퍼졌다.
"기대하지."
이내 제트의 앞에 검은 철로가 깔리며 하얀색 쿠라이너가 지나갔다. 순식간에 사라진 열차의 뒤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눈만큼은 잔뜩 쌓여있었다.
-
"라이토! 대체 어딜 갔다온거야?!"
라이토가 열차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들려온 것은 미오의 목소리였다. 화들짝 놀라 멍청하게 어, 어 하는 소릴 뱉고 있자니 이번엔 토캇치의 말이 들렸다.
"맞아, 패스는 확인 안 한거야? 다들 무지 걱정했어."
그제야 라이토가 패스를 꺼내 확인해보자 화면엔 전화가 왔다는 표시가 여러개 떠있었다. 아차 싶어져 그 김에 시간도 확인하니 꽤 지난 시각이였던데다가 열차 안엔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모여있었으니 확실히 걱정을 많이 했겠다 싶었다. 바늘로 양심을 쿡쿡 찔리는 느낌에 라이토는 황급히 양 손을 모으고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 미안해! 이렇게 지났을 줄은 몰라서...!"
"뭘 하고 왔는데? 설명부터 해봐, 라이토."
벽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서있던 히카리는 라이토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째 또 귤을 들고 있던 왜건은 격렬한 구경의 촉이라며 제 양 어깨를 잡고 쓰러져 앉는 척을 했다. 어쩐지 머쓱해져서 제 뒷머리를 벅벅 긁은 라이토는 괜히 주변을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게 그러니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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