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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7
※가면라이더 블레이드 엔딩 스포 주의
“ ”
순간 손에 힘이 풀리나 싶더니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접시가 산산조각 났다. 가지런히 올려놨던 치즈 케이크 조각이 형편없이 뭉그러졌지만 지금은 그것보단, 하루카씨가 이상하다는 듯 내 이름을 불러왔지만 지금은 그것보단.
큰 창문의 블라이드 사이로 스치듯 본 얼굴이 눈앞에 선명히 남아 어른거렸다. 아니, 나는 제대로 본 것이 맞는가? 여기 있을 리가 없어, 하지만 그걸 제대로 판단하기도 전 발이 먼저 나가버렸다. 황급히 달려가서 벌컥 문고리를 잡아 열었지만 노력이 무색하게도 밖엔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바이크조차도. 역시 잘못 본 것이었나 싶어 주먹을 꾹 쥐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있을 리가 없었는데도 그런 것이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멍청한 짓일지도 모르지만. 이게 네가 말하는 인간다움인가? 나는 이제 인간에 가까워지고 있는가.
켄자키.
돌아온 하카란다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하루카씨가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무슨 일이냐고 묻는 것에 미안해져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며 웃어버렸다. 이제 제법 익숙해진 감정이 입에 머무는 것이 어쩐지 씁쓸하면서도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있을 시간은 없었기에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말하며 빗자루를 들었다. 케이크 조각은 이미 하루카씨가 치운 듯 했지만 접시 조각은 그대로였으니까, 괜찮다며 만류하는 것을 애써 막고는 비질을 하니 바닥에 털이 쓸리는 조용한 소리가 안을 울려왔다. 넘쳐나는 햇빛에 접시 조각이 반짝였다.
하카란다의 하루하루는 언제나 조용히 흘러갔다. 마지막 싸움 이후 몇 년이 지났던가. 물론 시끄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끔이고 지금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었으니 언제나 조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홍차가 담긴 잔을 건드릴 때마다 생각에 잠긴 눈은 자연스레 예전을 생각했다. 통제자. 싸움. 끝나지 않는 싸움. 아니, 끝은 났었다. 그땐 내가 마지막까지 남지 않았으니까. 지금 생각해봐야 덧없는 일이었기에 바다 안에 몸을 담그고 있던 휴먼 언데드도 생각했다. 그 이후에 생각난 것은 물론.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평화로운 날들. 다정한 하루카씨와 발랄한 아마네. 너도 그렇게 계속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넌 나에게 그걸 양보했다. 너는 상냥했다. 처음부터 그랬다. 마지막조차도. 네가 보여준 상냥함, 결국 내가 느낀 감정은.
“하지메 오빠!”
갑자기 들린 말소리에 그쪽을 바라보니 아마네가 쑥쓰러운 듯 웃고 있었다. 손에 들린 것은 아까와 똑같은 디자인의 접시, 놓인 것은 고구마 케이크였다. 달지 않게 엄마와 같이 만들어봤다며 시식해달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내 손에 쥐어준 포크를 잡고는 고맙다는 인사 대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마네가 내 앞에 앉을 때 포크는 케이크를 갈라 접시를 콩하니 찍고 있었다. 생각은 접어두는 편이 좋을 것이었다. 생각은, 하지만.
입 너머로 삼켜져가는 케이크는 달았다. 맛있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좋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어쩐지 삼키기도 전부터 목구멍이 조여와 저도 모르게 콜록이며 기침을 했다. 급하게 넘기는 홍차가 쓰다. 아마네가 놀란 듯 내 등을 토닥였지만 홍차를 넘긴 후에도 나오는 기침에 깨달았다. 폐에서부터 쓰린 감각과 내부를 채워오는 저릿함에 그제야 깨달았던 것이었다. 내가 그리움이란 감정을 굳이 알 필요가 있었을까. 얘기해봐, 켄자키. 켄자키 카즈마. 의미 없는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이 들려올 리 없다는 건 그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아마네가 황급히 주방 쪽으로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물을 마시고도 괜찮아질지는 스스로 확신할 수 없었다. 가슴을 꽉 움켜쥐자 고통이 느껴졌다.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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