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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즈커크] 악몽

가또쇼콜라 2018. 11. 7. 16:06

2013.11.11




1.

본즈, 본즈여기 있는 거 맞지? 그렇지?”

 

또 악몽을 꾼 모양이었다.

덜덜 떨리던 손이 필사적으로 본즈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항상 맑게 빛나던 봄베이 사파이어빛 눈동자가 눈물로 흐려진 걸 보며 본즈는 쓰게 입 꼬리를 일그러뜨렸다. 멍청한 본즈. 멍청한 꼬맹이.

 

 

2.

메디컬 베이에서, 커크는 언젠가 본즈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 있었다. 있지, 난 항상 바다가 보고 싶었어. 너무도 뜬금없는 이야기였기에 본즈가 갑자기 무슨 소릴 하냐고 묻자 커크는 책상에 팔꿈치를 대어 턱을 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입을 열었다.

 

[내가 어릴 때 말이야. 어머니가 새아버지에게 학대당한 후에, 그 때마다 어머니는 아버지 생각을 하는 듯 하다가 아주 가끔 내 눈을 보고 속삭였었어. ‘네 눈에는 바다가 깃들여져 있구나. 조지, 조지와 같은 눈이야.’ 그리고는 송곳을 들고 왔었지. 나는 도망쳤었고. 그것 때문인지 항상 바다가 보고 싶었어. 아버지는 도대체 어땠는지 궁금해서. 정작 가보진 않았지만.]

 

절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할 만한 얘기는 아니었는데, 커크의 표정은 평소와 똑같아서 본즈는 헛웃음을 지었다. 안쓰러웠기 때문이라고 본즈는 생각했다. 오히려 지나치게 덤덤하다 할 정도인 그 태도 때문에.

그 때문이었는지 본즈는 커크에게 붙이던 반창고를 마저 붙이고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탐사가 끝난 후엔 갈 수 있잖아?]

 

자기가 말해놓고도 아차, 하긴 했지만.

본즈가 시선을 커크에게 돌렸을 때 커크는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으로 본즈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말실수 한 건가. 속으로 자기 자신을 자책하며 본즈가 다시 입을 열어 미안하다고 하려 했지만 그보단 커크가 한발 더 빨랐다. 본즈가 말을 꺼내기 직전 커크가 먼저 말을 했던 것이었다.

 

[그럼 같이 가자, 본즈. 간다면 너랑 가고 싶어.]

 

커크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평소와 똑같은 장난스러운 미소였다. 그 미소를 보며 본즈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불안했다. 정말 괜찮은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3.

오래간만에 온 지구는 겨울이었다. 탐사가 끝났으니 각 대원들에겐 일주일간의 긴 휴일이 주어졌다. 사관학교를 나오는 길에, 본즈는 휴일동안 자신의 집에서 지내며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했다. 커크는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고맙다고 말하며 본즈를 껴안았다. 약속했던 대로 바다를 보러 가자고도 했다. 자신의 집에서 얼마 안 되는 짐을 가져와 본즈의 집에 푼 커크는 본즈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둘은 차를 타고 바다로 향했다.

 

 

4.

겨울바다는 색이 맑았다. 마침 푸르고 하얀 바다 위로 눈까지 떨어지고 있어 커크는 하얀 김을 토해내며 엄청 예쁘다고 말했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모래사장에서 예쁜 돌들과 조개, 소라를 골라 주워 모으다 해변에 서서 출렁이는 파도를 보며 물속에 들어가 볼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커크를, 본즈는 팔을 잡아 끌어냈다. 당연히 농담이지! 변명하는 커크를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본 본즈는 추우니 이만 돌아가자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순간 커크의 눈이 너무 슬프게 빛나 멈칫했다. 커크가 말했다.

 

[어머니는 내 눈에서 이런 걸 봤던 걸까?]

 

본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느새 어두워진 쪽빛의 하늘을 보며 다시 차를 타고 돌아온 그들은 목이 적당히 길고 몸통이 점점 커지다 작아지는 원통형의 예쁜 유리병을 골라 그 안에 모래사장에서 주웠던 것들을 담았다. 병목엔 파란 색과 노란 색의 리본까지 달아주었다. 장식장의 가운데에 놓자 완벽하다고 말한 커크는 웃었다. 그 뒤 샤워와 양치질까지 한 후 이불을 폈다. 침대가 정말 크다고 커크가 농담처럼 말하자 본즈는 잘 자기나 하라며 불을 껐다. 본즈가 이불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옆에서 새근새근하고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빨리도 잔다. 본즈는 피식 웃으며 자신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새벽, 억눌린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또 악몽을 꾼 모양이었다.

 

 

5.

본즈가 회상하기론, 사실 커크는 자주 악몽을 꾸긴 했었다. 특히 스타플릿 사관학교에서, 엔터프라이즈호의 대원이 되기 전에 같은 기숙사를 쓰던 시절. 커크가 여자들과 자지 않고 얌전히 기숙사로 돌아와 잤을 때는 항상 악몽을 꾸곤 했었다. 소리가, 본즈가 있는 옆 침대에서 생생히 들려왔었으니까. 울며 애원하는 소리, 심하게 뒤척이는 소리, 이불 시트를 꽉 붙잡는 소리, 마지막엔 억눌린 비명……! 본즈가 이름을 부르며 황급하게 깨울 때 즈음이면 커크는 눈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로 눈을 두어 번 깜빡여 본즈의 얼굴을 보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곧바로 웃었다. 미안해, 내가 잠 깨웠어? 항상 이러네. 그러면서, 눈물을 팔소매로 슥슥 닦으면서.

그래도 엔터프라이즈호의 함장이 된 후엔 이런 일이 별로 없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바다에 간 것이 화근인 모양이었다. 황급히 본즈가 커크를 깨우자 커크는 다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 상체를 일으키곤 본즈를 바라보며 온 몸을 떨었다.

 

본즈, 본즈여기 있는 거 맞지? 그렇지?”

 

덜덜 떨리던 손이 필사적으로 본즈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항상 맑게 빛나던 봄베이 사파이어빛 눈동자가 눈물로 흐려진 걸 보며 본즈는 쓰게 입 꼬리를 일그러뜨렸다. 멍청한 본즈. 멍청한 꼬맹이.

 

그래, 나 여기 있어. 항상 네 곁에 있어.”

 

본즈의 옷자락을 잡은 손을 붙잡은 본즈는 그 손을 위로 옮겨 팔뚝을 한 번 꽉 쥐었다 놓고 어깨를 한 번 더 꽉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힘껏 껴안았다. 커크의 몸은 아직 덜덜 떨리고 있었기에 본즈는 더욱더 힘을 줘서 끌어안았다.

본즈, 본즈커크가 발작적으로 중얼거리던 이름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잡힌 옷자락의 감촉도 여전히 느껴졌다. 멍청한 커크……본즈는 커크의 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껴안은 힘을 풀지 않은 채, 그렇게라도 자신이 네 곁에 있음을 느끼라고, 왜 너는 항상 내게 멀리 있냐고 생각했.

 

항상 네 곁에 있다고, 

 

그리고 눈을 감았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창밖은 아직도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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