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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딕] 콩

가또쇼콜라 2018. 11. 7. 16:05

2013.10.03




1.

딕이 보기에 데미안은 아직 너무 어렸다. 아무리 브루스와 탈리아의 DNA를 사용해 만들어진 클론이면서 어쌔신이자 로빈이라지만 딕의 눈에 데미안은 고작 10살짜리 어린애일 뿐이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도) 브루스를 많이 닮은.

그렇다보니 조금씩 더 신경써주고 싶은 부분이 존재했고 실제로도 그러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 꼬마 로빈은 딕이 위해주는 행동이 죄다 마음에 들지 않던 모양이여서, 방에서 브루스에게 남길 간단한 편지를 쓰던 어느 날은 문득 한숨을 쉬고 말았다.

가령 어느 날의 저녁은 그랬다. 알프레드가 저녁준비를 하는 것을 딕이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치즈와 채소가 들어간 오믈렛이 있는 걸 보고 장식을 자신이 해도 되느냐고 물었었다. 친절한 집사는 흔쾌히 수락했고 딕은 ‘어린’ 데미안을 위해 완두콩과 케첩을 이용해 초록색 입술로 미소 짓는 빨간 눈의 스마일을 만들어냈다. 어째 좀 기괴해 보이긴 했지만 조커에 비하면 저 미소는 아기천사가 웃는 거나 다름없다고 딕 스스로 위안을 하며 오믈렛을 비롯해 완성된 다른 음식들을 쟁반에 담아 테이블 위로 날랐다. 그리고 알프레드가 테이블을 세팅하는 사이 딕은 데미안을 식탁으로 데려왔다. 딕과 데미안이 의자에 앉자 알프레드는 맛있게 드시라며 고개를 꾸벅이곤 식당에서 물러났다. 알프레드가 문을 닫는 것까지 본 딕이 식전인사를 하려 다시 테이블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엔 포크를 집어 들어 막 음식을 찌르려고 하던 데미안이 있어 딕은 팔을 뻗어 데미안의 팔을 잡았다. 그러자 안 그래도 퉁명스럽던 데미안의 표정이 더 퉁명스러워졌다.

 

“뭐야, 그레이슨.”

“잘 먹겠습니다 해야지, 데미안.”

“닥쳐.”

“데미안.”

“……”

 

데미안이 딕의 팔을 뿌리치려 했지만, 아무리 데미안이었어도 성인 남성의 힘은 쉽게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기에 결국 데미안은 입을 열어 (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작게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착하다, 우리 데미.”

 

싱긋 웃은 딕이 데미안의 팔을 놔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데미안은 거세게 머리를 흔들었다. 당장 손 떼라는 뜻인 걸 모를 리가 없었기에 하하 소리 내어 웃은 딕은 손을 떼고 제 자리에 있던 포크를 쥐려 했지만 그 순간 포크가 접시를 강하게 강타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데미안 쪽을 바라보았다가 시선을 조금 밑으로 내려 데미안의 접시를 바라보았다. 오믈렛 한중간에 포크가 박혀 있었는데, 정확히는 ‘완두콩 입술’에 박혀있었다.

사실 이런 상황을 딕 스스로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편식은 안 되니까 일부러 5개만 넣은 거였는데, 그것도 용납 못해서 세상에 포크를… 쩌저적 하고 접시에 조금씩 금이 가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서 딕은 황급히 데미안의 손을 잡아 억지로 접시에서 떨어트려놓았다. 그 바람에 오믈렛이 담긴 접시가 뒤집어질 뻔 했지만 간신히 다른 쪽 손으로 잡아채 원래대로 해 놓을 수 있었다.

 

“이거 놔, 그레이슨!”

 

동시에 들린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함께 팔이 가격당하는 소리. 딕은 저도 모르게 윽 소리를 내곤 데미안의 손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저도 모르게 세게 쥐고 있었던 모양인지 데미안의 손에 빨간 자국이 남아있었다.

 

“세상에, 데미안. 괜찮아?”

“니가 한 짓이잖아!”

 

그래, 내가 한 짓이지…문득 그런 생각을 하며 딕은 제 팔에도 남은 빨간 자국을 바라보았다. 10살짜리가 친 건데 이정도란 말이야?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겨우 5개잖아.”

“콩이잖아.”

“편식하면 건강에 안 좋아.”

“난 건강해.”

 

나중에 나빠질 수도 있잖아, 데미안. 딕이 타일렀지만 데미안은 아직도 콩 5개를 먹을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딕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뭔가 결심한 듯 진지한 눈빛으로 데미안에게 말했다.

 

“계속 그러면 나 울 거야, 데미안.”

“……그레이슨, 미쳤냐?”

 

갑작스런 딕의 (개)소리에 데미안이 경악한 표정으로 딕을 쳐다봤지만 딕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하기만 했다.

 

“진심이야. 나 한다면 하는 거 알지?”

 

물론 타고난 연기자였던 딕의 연기였던 데다가 운다는 소리는 가끔 농담처럼 브루스나 제이슨에게나 하던 말이었지만 데미안이 그걸 알 리가 없었으므로 데미안은 안 그래도 찌푸려져 있던 미간을 더욱 찌푸렸다. 한참동안 말이 없던 데미안은 쥐고 있던 포크를 더욱 세게 쥐곤 쾅 소리가 날만큼 세게 오믈렛 위의 콩을 찍었다. 완두콩이 반쯤 부서져가고 있었지만 데미안은 전혀 개의치 않고 다른 콩도 포크에 찍었다. 그렇게 세 개, 네 개, 다섯 개. 작은 입이 벌려지더니 포크를 텁 하고 물었다. 지어지는 죽을 듯한 표정과 함께 목울대가 움직여지자 데미안은 천천히 포크를 입 안에서 뺐다. 포크에 찍혀있던 콩이 전부 없어져 있었다. 딕이 환한 표정을 짓자 데미안은 포크를 다시 꽉 쥐며 딕을 노려보았다.

 

"잘 했어, 데미안."

"꺼져."

 

딕이 물 컵을 건네주자 데미안은 숨도 쉬지 않고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켰다. 어지간히도 싫은 모양이었다. 데미안이 물 컵을 깨트릴 기세로 탕 내려놓고 오믈렛을 포크로 쿡 찍어 씹어 먹는 걸 보며, 웃은 딕은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이르곤 자신도 포크를 쥐어 식사를 시작했다. 자그마치 30분만의 일이었다.

 

이 일 이외에도 많은, 아주 많은 일이 있었지만 더 생각하자니 너무 피곤해져서 딕은 그냥 생각하기를 관뒀다. 그나마 요즘은 콩도 잘 먹는 것 같긴 한데(먹을 때마다 죽을상을 짓는 걸 제외하자면), 말도 (예전보다는)잘 듣는 것 같긴 한데……어째서인지 데미안을 볼 때마다 미묘한 기분이 드는 건지, 고개를 갸웃한 딕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래, 그래도 아직 어리니까…그리고 또 한숨.

 

 

2.

데미안이 보기에 딕은 아직도 유치했다. 가령 오믈렛 위의 미소라던가, 하는 행동들 전부! 자기가 무슨 손가락을 빨며 사탕이나 초콜릿같이 단 것만 찾고 밤엔 어둠이 무서워서 인형을 껴안고 자는 멍청한 아이인 줄 아는지. 그런 생각을 하며 데미안은 눈을 가늘게 뜨곤 침대 한구석에 놓인 박쥐 인형을 바라보았다. 그래, 저건 빼고. 저건 정당한 거야.

하여튼, 데미안은 도통 딕을 이해 할 수 없었다. 다른 건 다 제쳐 두고라도 콩을 먹지 않으면 건강이 안 좋아진다니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물론 최근 들어 콩을 (억지로)먹기 시작했지만 콩을 먹기 시작한 건 딕을 위해서가 절대 아니었다. 콩을 먹지 않으면 운다고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는 게 불쌍해서 먹는 거였다. 불쌍해서라고!

그렇게 데미안은 딕이 선물해준, 애꿎은 울새 인형만 잡아 뜯었다. 실밥이 뜯어지고 안의 솜이 터져 나올 정도로.

 

 

3.

그리고 그들의 행보를 이제껏 지켜보던 팀은 끝내 짜식은 표정을 지었다. 마음 같아선 너무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데미안의 ‘내가 봐준다’는 마인드를 한 톨의 거짓도 없이 이야기 해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팀, 데미안은 아직 10살이야. 너무 어리다고.” 라며 되도 않는 옹호를 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아 그래도, 딕, 진짜 답답해 죽겠네. 딕이 봐주고 있는 게 아니라 저게 지금 자기가 어른인 마냥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팀이 머리를 부여잡고 앓는 소리를 흘리자 옆에 앉아있던 콘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4.

덧붙여 한밤중에 아지트로 쳐들어온 딕의 푸념을 반강제로 제압당한 채 듣던 제이슨은 딕을 진심으로 죽여 버릴까 nnn번째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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