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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빅 기반, 스포 주의
※논컾. 정말 빅터만 나오는 단문입니다.
[나는 북극으로 간다. 인간이 없는... 날 죽이고 싶다면 지옥과도 같은 추위를 견디고 와. 북극의 가장 높은 곳에서 너를 기다리겠다.]
수많은 죽음과 셀 수 없을 만큼의 슬픔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정상에 서있던 것은 앙리 뒤프레였다. 아니, 괴물이라고 불러야만 할 존재가.
달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반투명한 흰색의 커튼이 바람을 따라 힘차게 흔들리던 그 날 밤엔 줄리아가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운명조차 그의 사랑스러움을 보면 한 순간이라도 눈을 돌려야만 했다. 그러나 괴물은 그러지 않았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거쳐 결국 나와 룽게, 숙부님, 누나에 이어 줄리아에까지 손길을 뻗쳤다. 나는 방관해야만 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증오와 복수심. 이기심.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조차 의미 없었다. 나의 모든 관심과 시선과 사고회로가 모두 괴물에게 가있었으므로.
북극의 가장 높은 곳으로 가는 길은 온통 하얗고 뿌옇기만 했다. 나는 지평과 하늘이 구분되지 않았기에 그저 나아갈 뿐이었다. 사박거리는 눈을 밟아 뭉치게 할 때마다 나던 뽀드득거리는 소리도 어느샌가부터 들리지 않았다. 칼바람 소리조차도 새하얀 눈에게 먹혀 내 주변에 존재하는 건 오로지 고요 뿐이었다. 지옥이 존재한다면 아마 이런 곳이리라고 생각했다.
눈에 반쯤 묻혔지만 점점이 남아있는 핏자국은 분명 선명하게 그 자리에 있었다. 감각과 사고가 반쯤 나가버렸음에도 확신했다. 괴물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을거라고. 저 멀리에 우뚝 솟은 빙산이 희미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저 끝에는 괴물이 있으리라. 앙리 뒤프레의 탈을 쓴, 내 죄악의 결과물이 창조주인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기필코 내 손으로 모든 것을 끝내리라고 다짐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괴물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미 미쳐버렸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ㅡ
"이게 나의 복수야... 나의 친구여."
단두대 아래로 앙리의 목이 떨어지던 그 날과 똑같이 평온한 표정으로 괴물은 숨을 거뒀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제대로 다시 이해해버리고 말았다. 모든 죄악조차 눈으로 덮어버릴 수 있을 순백의 공간에는 메아리치는 나의 절규만이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괴물의 시체가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던 나는, 죄악과 운명만을 곱씹던 나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로라. 빛의 커튼이 마치 줄리아가 죽었던 그 날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절망만이 가득했다는 것마저 똑같았다. 신을 모독하려던 나의 야망은 이렇게 끝의 끝까지 운명 앞에 허무히 스러져버리고야 마는가.
하늘과 지평은 여전히 뿌옇고 하얘서 전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시체는 방금 전에 숨을 거둔 것마냥 일말의 변화조차 없이, 얌전히 나의 다리 위에 있었다. 무언가를 바꿀 기력조차 없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던 건 이 채로 최후를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운명 앞에 굴복하다 못 해 부러진 채로 쓰러져버리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한가지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극한의 추위가 존재하는 이곳은 결국 냉동고와 다름이 없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시체 두 구를 발견하게 된다면... 온전한 시체를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나는 다른 사람조차 이 거대한 유혹 앞에 서는 것을 방관하는 셈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나와 이 시체를 숨겨야만 했다. 다시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곳에, 그 누구도 찾을 수 없을 곳에.
하지만... 하지만 내가 왜 그래야하지? 나는 실패했다. 운명에게 패배하고 신에게 저주받았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 다른 누군가는 성공할지도 모르는데.
사고회로가 점점 뒤틀려가고 있었으나 거의 얼어붙은 나는 자각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이게 나의 본성일지도 몰랐다. 그저 인간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그 순간 많은 과거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눈물 방울이 얼어붙은 뺨 위에서 데구륵 떨어졌지만 그것을 자각하기도 전에 나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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