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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무나 아름답다 못해 신성하게까지 느껴지는 멜로디가 살리에리가 연주하고 있는 피아노에서부터 흘러나왔다. 느릿하게 눌려지는 건반들과 눌릴 때마다 가늘게 떨며 음을 토해내는 피아노 안의 현들, 부드럽게 밟혀지는 페달. 살리에리는 그 모든 감촉들을 하나하나 느끼며 아까부터 웃고 있던 입 꼬리를 더욱 위로 끌어당겼다. 매우 만족스러워 보이는 듯 한 웃음이 살리에리의 얼굴에 번지고, 동시에 흐르던 눈물의 양이 더욱 더 많아지고……
살리에리가 속삭였다.
“라크리모사.”
2.
마침내 숨이 끊어진 모차르트가 붉은 빛의 소파 위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을 지나치리라만치 창백했고, 아름다웠다. 살리에리는 그제야 목을 조르던 손을 뗐지만 아직도 조르던 목의 온기가 손에 남아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 손을 털고는 모차르트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떠져서 흰자만이 보이는 눈을 손바닥으로 감겨줬지만 그는 미동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앉아있던 것을 편하게 해주려는 듯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정자세로 눕혀줬지만 누워있는 모습이 어쩐지 불편해 보여 푹신하고 적당한 크기의 쿠션 하나를 가져다 모차르트의 머리에 받쳐주고는 책상 위에 놓여있던 악보를 집어 들었다. 여전히 오선지들과 그 위에 깨알같이 그려져 있는 음표들, 몇 번 눈으로 흩고는 악보를 구깃하게 쥐곤 방의 중앙에 있던 피아노로 향했다.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노란 색의 부드러운 조명 아래에 아름답게 윤기가 흐르는 검은 빛의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살리에리는 의자를 빼서 앉고는 악보를 올려놓은 뒤 천천히 피아노 건반 위에 열 개의 손가락을 펴서 가볍게 올려놓았다. 이내 손가락이 건반을 누르고, 이어지며 부드럽게 멜로디를 연주해내기 시작했다.
3.
쿨럭, 기침 소리가 들렸다. 숨을 못 쉬고 있어 쿨럭 하고 연신 기침만 뱉어내던 얼굴은 어느새 붉어져 있었다.
“답답한가요, 모차르트.”
살리에리가 물었지만 모차르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했을 것이었다. 목이 졸린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지만 더 정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살리에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잔뜩 졸아든 모차르트의 동공을 보다가 힐끗, 옆에 있던 테이블의 위에 놓인 찻주전자와 찻잔 두 개, 작은 쿠키 상자를 바라보았다. 고풍스러운 꽃무늬가 색색으로 새겨진 투명한 흰 색의 찻주전자 안에선 얼그레이 홍차 잎이 느릿하게 차속에서 우러나고 있었고 그 얼그레이 홍차가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각 잔에 따라져 있었었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잔은 거의 빈 반면 살리에리의 잔은 하나도 비어있지 않았다. 맨 처음 차를 따랐던 그 양 그대로.
특수한 약재들을 섞어 만든 마비, 진통 효과가 있는 가루라고 살리에리가 그 가루를 사던 날 교역상인은 은밀하게 속삭였다. 그 가루를 구하는 건 어려웠지만 아픈 모차르트의 집에 찾아가 아픈 주인을 대신해 자신이 차를 끓여내겠다고 하고 가루를 넣는 건 쉬웠다. 지나치다 할 만큼.
“당신은 순수해요. 순진하고.”
목을 조르던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차르트의 눈동자는 위로 올라가더니 이내 흰자만을 보이게 되었다.
4.
“설마 마에스트로가 찾아올 줄은 몰랐어요.”
창백하고 아파보이는 얼굴로 모차르트는 씨익 웃어보였다. 여전히 발랄한 그였지만 예전만큼 발랄하고 쾌활하진 못했다. 모차르트는 현관문을 닫고는 살리에리의 뒤에서 양 어깨를 잡더니 소파가 있는 방향으로 밀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힘드셨을 텐데, 어서 앉아요. 차라도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콘스탄체는 나갔고…역시 제가 만들까요?”
소파와 테이블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자 어깨에서 손을 뗀 모차르트는 팔에 끼고 있던 악보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팔짱을 끼며 고민하듯 물었다. 그에 살리에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괜찮습니다. 아무리 집주인이라도 병자에게 만들어달라고 할 순 없지요. 제가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마에스트로는 손님인걸요!”
“재료가 어디에 있는지만 알려주시면 됩니다.”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고민하던 모차르트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살리에리의 손목을 잡고는 끌었다. 이쪽이라며 몇 가지 얘기를 더 하던 모차르트는 문득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모차르트, 괜찮습니까? 살리에리가 묻자 자각을 못 하고 있었던 듯 아, 하고 짧게 내뱉은 모차르트는 괜찮다며 다시 웃어보였다.
“흔히 있는 일이에요.”
이내 주방에 도착하고 찻주전자와 찻잔, 얼그레이 홍차 잎이 들어있는 병을 알려준 모차르트는 뒤에서 느긋하게 살리에리가 차를 만드는 과정을 구경했다. 차를 만드는 중간에 살리에리가 병에서 뭔가 가루를 넣는 것이 보여 집에 있던 설탕인가? 싶어 모차르트는 굳이 묻지 않았다. 살리에리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차가 완성되고 모차르트는 어딘가에 있던 작은 쿠키 상자를 찻주전자와 찻잔이 있던 쟁반 위에 올려놓았다. 차에는 쿠키가 있어야죠. 살리에리는 그랬던가, 하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해보였다. 모차르트는 또 웃었다.
악보가 놓여있던 테이블 위로 쟁반이 놓여지고 소파에 앉은 모차르트는 찻잔을 들어 살리에리를 보며 고맙다고 하곤 천천히 차를 들이켰다. 살리에리도 찻잔을 들어 마시려는 듯 입가에 가져다 댔다가 미간을 찡그렸다.
“왜 그래요?”
“향이 독하군요.”
“마에스트로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라는 듯 살리에리를 쳐다보는 모차르트의 눈길엔 여전히 한 점도 의심이 들어있지 않았다. 살리에리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에 모차르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어서 작곡을 해야 할 텐데 여러 가지 일이 너무 많아 건들지를 못 하고 있네요. 그렇게 서두를 꺼내려던 모차르트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가 천천히, 힘없이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모차르트? 살리에리가 불렀지만 모차르트는 대답이 없었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있던 살리에리가 소파 쪽으로 다가가 모차르트의 눈을 자세히 보자 동공은 점처럼 졸아들어 있었다. 그것을 보자 살리에리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모차르트를 깨우는 대신 모차르트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거미처럼 양 손의 네 손가락이 목에 휘감겨지고는 양 엄지가 쇄골 사이의 기도를 누르기 시작했다.
5.
“마에스트로?”
현관문을 연 모차르트가 놀랍다는 듯 살리에리를 쳐다보았다. 안토니오 살리에리. 다름 아닌 그가 모차르트의 현관문 앞에 서있었던 것이었다.
“당신이 아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 꽤 유명한가 보군요.”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가 살리에리가 들어가도 되겠냐고 질문을 하자 모차르트는 활짝 웃었다.
"안 그래도 적적해서 작곡을 하던 중 이었어요…마침 잘 오셨어요. 들어와요."
그 말이 사실이라는 듯 모차르트는 손에 들려있던 악보를 들어 보였고, 들어 보인 악보에 시선을 가져간 살리에리는 물었다.
“무슨 곡입니까?”
“좋은 질문이에요. 레퀴엠을 작곡하고 있어요. 나의 사신으로부터 100두카토를 받고 의뢰를 받았죠…”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모차르트가 다시 웃었다. 미묘한 웃음이었다. 모차르트는 들고 있던 악보의 앞면이 살리에리에게 보이게 만들었다. 작은 음표들로 가득 찬 오선지들의 맨 위엔 필기체로 흘려 쓴 힘없는 글씨가 있었다.
“눈물의 나날이라고 해요. 에스파냐어로 직역하면…”
모차르트가 속삭였다.
“라크리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