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시무스 칸토어는 생각에 잠겨있는 일이 많았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느끼기로는 그랬다. 필요한 정보를 모으고 있는 것을 타인들이 멋대로 오해하고 있는 것 뿐이었지만, 당연하게도 해명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으므로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러니까 남들에게는 오늘도 막시무스가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었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니, 편리하지만 번거롭고 불편해.' 노을 지는 하늘 아래, 훈련장의 적당한 구석 나무쪽에 앉아 정보를 취득하고 엔지니어들의 동향을 대략적으로 파악하려던 막시무스는 문득 생각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웬만한 사람들은 거의 식당에 있을 시간이니 당연했다. 건물 밖에 있는 본인을, 이 장소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단절된 개체라고 칭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연결된 것은..
비록 기계라곤 했으나 항상 거리낌없이 자폭을 해내는 맥스를 보며 리즈는 기묘한 거리감을 느끼곤 했다. 이상할 정도로 낯익은 검술이, 그럼에도 모조품일 뿐이라는 생각이 그랬다. 자신이 불꽃을 피워내고 그려낼 때, 그것을 단숨에 확장시켜 폭파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가깝고도 멀었기 때문에 리즈는 항상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영문을 알 수 없음에도 묶여진 인연에 대하여.물론 의문을 가진다고 한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시자가 인도하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몬스터를 베어 쓰러뜨리며 자신들에게 필요한 조각을 되찾는다. 따로 되새길 필요도 없었다. 리즈에게 있어 이제는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 되었으나, 그럼에도 가끔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그렇게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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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7※죠죠 온리전에서 판매했던 원고입니다. 재판할 계획이 아예 없기 때문에 웹공개합니다.※현대 대학생/하나하키 AU 그들, 시저와 죠셉이 대학을 다니던 3학년 때의 여름이었다.꽃을 토해내던 죠셉의 동기가 있었다. 보라색의 각시붓꽃. 길거리에 떨어져 있던 꽃이 하도 예뻐서 저도 모르게 주운 적이 있었는데 그러고 몇 시간 후부터 꽃을 토하게 됐다고 얘기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죠셉이 슬쩍 물으니 동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얼굴을 슬쩍 붉힐 뿐이었다.동기는 며칠에 한 번씩 불규칙적으로 꽃을 토해냈다. 토해내기 전엔 심장이 저릿거리고 토기가 울컥 치밀어 오른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동기는 화장실로 달려가 괴로운 소리를 한바탕 낸 다음 옷에 꽃잎을 잔뜩 달곤 화장실에서 나오곤 했다..
ㅎ케이xㅁ의신 평소와 같은 시각이었으므로 그 후의 일 또한 같았어야 했을 테지만, 오늘따라 들려오는 발걸음의 메아리가 흐트러져있었다. 의신은 한쪽 발을 조금 끄는 듯한 저 소리를 많이 들어봤기에 무슨 의미인지, 동시에 그럴 리가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의문을 품은 의신은 빠르게 걸어가 문을 열어 젖혔다. "케이?" 잠시 멈칫했던 인영은 불빛 아래로 들어와 의신을 빤히 마주했다. 사람이라기보단 검은 귀신에 가까운 언제나처럼의 케이였으나, 묘한 변화가 생겼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의신은 안경을 끼고 턱을 오른손으로 괸 채 케이의 주변을 천천히 빙글빙글 돌았다. "의, 신?" 케이가 더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지만 안타깝게도 생각에 빠진 의신에게 케이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 들렸음에 반사적..
※동빅 기반, 스포 주의※논컾. 정말 빅터만 나오는 단문입니다. [나는 북극으로 간다. 인간이 없는... 날 죽이고 싶다면 지옥과도 같은 추위를 견디고 와. 북극의 가장 높은 곳에서 너를 기다리겠다.] 수많은 죽음과 셀 수 없을 만큼의 슬픔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정상에 서있던 것은 앙리 뒤프레였다. 아니, 괴물이라고 불러야만 할 존재가.달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반투명한 흰색의 커튼이 바람을 따라 힘차게 흔들리던 그 날 밤엔 줄리아가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운명조차 그의 사랑스러움을 보면 한 순간이라도 눈을 돌려야만 했다. 그러나 괴물은 그러지 않았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거쳐 결국 나와 룽게, 숙부님, 누나에 이어 줄리아에까지 손길을 뻗쳤다. 나는 방관해야만 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회색도시 2 약스포일러 주의 상일이 문득 올려다본 하늘은 가을이 되어야 볼 수 있는 단풍잎 같기도 했고, 마지막으로 세차게 열을 내어 모두 태워버리는 장작 위의 불꽃같기도 했다. 노을 진 하늘 끝에 점점이 먹히다 흐릿하게 남은 푸른빛에까지 시선이 닿자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핸들을 꽉 쥐고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뜬 상일은 시선을 내렸다. 차창 밖에는 엔진 소리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발걸음 소리 등 온갖 것들이 가득했지만 차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정확히는 언젠가부터 조용해졌던 거지.’ 옆의 조수석으로 눈을 돌리니 팔짱을 낀 채로 상체를 잔뜩 웅크려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은창을 볼 수 있었다. 참 불편하게도 잔다고 상일은 세 번째로 생각했다.성식이 시킨 일을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실수는 없었으며 ..
2017.08.12 "좀 내버려두라고, 개자식아." 마일즈는 손에 쥔 총을 떨어트리지 않은 채로 이를 갈며 말했다. 언제나 그렇듯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말을 거는 것은 마일즈가 가진 일종의 나쁜 버릇이었다.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언젠가 생길 지성을 기대하는 어리석음. 그렇다는 것을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었기에 자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덤이었다.한숨을 쉰 마일즈는 손을 들어올려 총구를 제 왼쪽 눈에 가까이 댔다. 끝을 알 수 없는 새까만 심연이 보였다. 그 반대쪽 눈에 비치는 것은 마찬가지로 새까만 얼굴이었다. 기분 나쁜 녹색으로 빛나는 가루 인간. 나노 괴물. 월라이더. 보기만 해도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원초적인 감정이 혐오인지 두려움인지 마일즈는 알 수 없었다.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