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24 어느 순간부터 제트는 잠에 들 때마다 꿈을 꾸고 있었다. 쉐도우 라인의 주민은 꿈을 꾸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어둠의 정점인 그는 꿈을 꾸곤 했다. 꿈의 내용은 매일 달랐고 오늘 또한 그랬지만 그날따라의 꿈은 유독 특징적이였기에, 곧 꿈에서 깰 제트는. 제트는 미간을 좁혔다. 끝을 알 수 없는 새까만 어둠 속에 홀로 있는 것은 예전의 현실과도 같았지만 좀 더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어째서인지, 가슴을 비롯한 온 몸에 압박감과 답답함이 느껴져 제트는 숨을 힘겹게 내쉬었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물거품이었다. 물거품? 제트가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뻗은 손은 느릿하게 휘저어져 슬로우 모션을 보는 것도 같았다. 발을 뻗어 걷고 나서야 이상하게도, 본능적으로 이곳은 물 속이라는 걸 깨달..
2015.09.20 연말, 거리가 사람으로 가득 차 모두가 시끄러워지고 기대를 가득 품게 되는 날이었다. 누군가는 내일을 꿈꾸고 또 누군가는 소원을 빌 테였다. 아무렇지도 않거나 새로운 희망에 차거나, 무사히 내년을 맞았다는 안도감을 갖거나. 이매지네이션이 풍부해지는 얼마 안 되는 날 중 하루이기도 했다. 레인보우 라인이 힘을 얻는 날, 크리스마스에 이어 여유가 생겼다고 말하는 차장의 얼굴은 퍽 즐거워보였다. 그 뒤에서 카트에 귤을 잔뜩 담아 가져온 왜건은 곧 격렬하게 나이를 먹는 날이니 거울떡은 어떻겠느냔 얘기를 넌지시 던졌고, 열차 안은 금세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라이토의 목소리가 제일 컸단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일이겠지만 어쨌든간에. 왜건이 나눠준 귤이 새콤한 주황빛으로 반짝이는 걸 맛있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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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9 "내가 사라져도 넌 괜찮을거야. 오히려 기뻐해야 할테지.""…알고 있어.""그래. 네가 아는대로 난 어둠의 황제니까." 제트는 라이토의 뺨을 만지기라도 할 듯 손을 들어올려 뻗었다가 손 끝이 라이토에게 닿기도 전에 주먹을 쥐곤 팔을 내렸다. 허공에 있는 무언가를 움켜쥐는 듯한 동작, 결국 그 손이 쥔 것은 은색의 별 모양 장식이었다. 라이토의 뺨에 닿은 것이기도 했다. 뾰족한 끝이 묘하게 라이토의 눈 바로 아래에 맞아떨어져서, 마치 별로 된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아보여 제트는 픽 웃으며 뺨에 대인 별 장식을 지그시 눌렀다 떼곤 테이블 위에 가볍게 떨어트렸다. 작게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별이 떨어지며 테이블에 진동과 움직임을 선사하곤 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것마냥 누워있게 되었지만 라이토..
2015.08.28 "기다렸다고, 라이토." 씩 웃은 제트는 라이토를 내려다보며 그의 가슴팍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 윽, 하는 억눌린 소리가 짧게 터져나오며 제트의 발을 쥐는 미약한 손길이 느껴졌지만 그것은 아기새가 나뭇가지에 내려앉을 때의 풍압과 무게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제트는 그저 웃음지을 뿐이었다. 이내 제 가슴팍과 무릎이 닿을때까지 허리를 숙인 제트는 라이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제 발을 쥔 손을 잡아 억지로 깍지를 꼈다. 라이토의 손가락은 그것을 거부하듯 쫙 펴져있었지만 제트는 그것조차도 전혀 상관 없다는 듯 손가락을 세워 손톱이 라이토의 살결 새로 파고들게 했다. 다시 짧은 비명이 잇새로 새어나오며 라이토의 몸이 꿈틀 움직였다. "네 반짝거림은 언제나 그대로군. 심지어 계속 강해지기까지 ..
2015.08.28 중구의 밤은 묘하게 떠들썩한 날이 많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죽은 자들의 일일 뿐, 산 자들에겐 한없이 고요하기만 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었다. 산 자들이 잠을 자고 각자의 꿈을 채워넣는 시간, 동시에 죽은 자들이 활동하기 제일 좋은 시간. 물론 산 자들이 그렇게 느낄 수 있었던 건 그곳을 담당하던 차사들 덕이 제일 컸다. "봐, 영파가 잡혔어. 난 북쪽으로 가볼게. 이래야, 가자!" 그 날 새벽의 임무는 쪽박귀들을 데려오라는 것이었다. 바이러스 침투로 인한 데이터 오류 때문에 그만 명계의 쪽박귀들이 인간계로 전송되어 풀렸다는 것이였다. 장소는 여러곳이었지만 개중엔 중구도 있어 이동이는 어질산의 소울폰으로 연락해 임무를 내렸고 어질산은 지오와 하륜에게 임무의 내용을 전했다. 가..
2015.08.28 하얀 눈이 내리던 날, 바이올린과 기타와 플룻으로 길거리 공연을 하던 그들의 수많은 음표는 눈 위에 얼마나 많이 쌓였던가? 다른 사람들이 걸으며 생기는 사박거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눈 결정이 음표와 함께 부숴지며 반짝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공연을 구경하는 꽤 많은 수의 인파들, 그 한가운데에 서있던 성진은 말없이 미소지으며 가벼운 박수를 짝짝 치고는 위를 바라보며 숨을 뱉었다. 펭귄 령충 몇마리가 물 위를 부유하듯 출렁이며 도는 것이 보였지만 그 앞을 가로막으며 나와야 할 뿌연 입김은 보이지 않았다. 차사니까 당연하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성진은 어쩐지 씁쓸해졌지만 그래도 지금 상태나 상황에 대해서 후회할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중구 담당 차사이고 이미 죽었으니까, 해..
"효첨이 형, 오늘도 수고했어요." 막 상황이 끝난 직후, 소울폰으로 제령한 령충의 데이터를 보내던 효첨은 문득 들려온 정월의 말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정월은 언제나처럼 방긋 웃고있었는데 그게 가끔 하얗고 작은 진돗개 같다는 걸 정월 스스로는 역시 모르는건지, 이번엔 정월의 머리로 시선을 옮긴 효첨은 그걸 한참이나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곤 턱으로 정월을 가리켰다. "형이 더 힘들잖아요? 쫓는 건 같이 쫓아도 제령은 거의 형이 하고.""…….""그런 말 마세요. 사실 도련님 몫까지 형이 다 하고 있는 것 같은걸요.""…….""효첨 형도 참." 정월이 소리내어 웃었지만 돌아오는 건 소울폰의 화면을 닫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 또한 익숙해진지 오래였기에 정월은 그저 웃음 뒤에 이어진 가벼운 헛기침을 할 뿐이었다..